[가치육아 - 이럴 땐] (38)
부모와의 관계가 '사회적 관계'의 시작
타인 대하는 부모의 태도, 언어 등 배워
새 친구 싫다고 거부하면 "일단 인정을"
소리 지르는 대신 다른 방법 찾게 해야
입력 : 2024. 08.22(목) 17:13 수정 : 2024. 08. 26(월) 15:15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친구와 무조건 사이좋게 지내야 하고, 무조건 다가가야 하고, 무조건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좋은 관계 맺기'는 아닙니다. 아이가 스스로의 '경계'를 지키면서도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격려해 주세요.
[한라일보] 처음 보는 또래에 유난히 부정적이라는 만 4세 아이. 낯선 친구가 쳐다보거나 가까이 다가오면 "저리 가", "싫어"라고 소리칠 때가 많다는데요. 이런 고민이 있는 부모라면 어떤 점을 생각해 봐야 할까요.
|부모에게 배우는 '관계 맺기'
모두가 태어나자마자 '관계 맺는 법'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처음 만나는 사람, 바로 부모와의 관계가 첫 시작입니다. 조건 없이 믿어주는 부모를 통해 아이는 '세상에 잘 태어났구나'라며 사회적 관계를 시작하게 됩니다.
아이가 배움을 얻는 것도 '부모'입니다. 엄마 아빠가 서로 이야기하거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속에서 아이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됩니다. 부모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나 오랜만에 지인과 안부를 주고받을 때의 태도, 모습 등을 받아들이면서 말이지요.
새로운 친구가 다가오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이의 기질적인 성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큰 것은 환경적인 영향입니다. 그런 만큼 부모 스스로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어떻게 대화하는지, 혹시 편견을 가진 태도와 말을 아이에게 보인 적은 없는지 되짚어봐야 합니다.
|"관계 맺기, 억지로는 안 돼요"
모든 부모는 내 아이가 더불어 잘 살길 바랍니다. 많은 이들과 관계를 잘 형성하며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기를 원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친구를 싫어하는 아이를 '문제적 시선'으로 바라봐선 안 됩니다. 관계는 결코 억지로 맺어지는 게 아닙니다.
아이가 처음 본 또래에게 "너 내 친구 아니야", "저리 가", "싫어"라고 소리쳤다면 왜 그런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낯선 친구는 싫지만 친한 친구는 좋아하는 것처럼 대상마다, 그리고 기분에 따라서도 반응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어보세요. "가치(*아이 이름)야, 무슨 일 있었어?", "네가 갑자기 친구에게 화를 내니까 엄마가 걱정되기도 하거든. 무슨 일인지 얘기해 줄 수 있어?"라며 아이를 우선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도 얘기할 겁니다. "저 친구 싫어. 나한테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처럼 말이지요. 그럼 그것은 인정해 줘야 합니다. "그래. 친구가 가까이 오는 게 싫다는 거지?"라면서요. 아이 말마따나 그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내선 안 됩니다. 아이가 들을 준비가 돼 있을 때 다시 물어야 합니다. "가치야, 그런데 다른 친구가 네가 싫다고 소리 지르고 오지 말라고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라고요.
이 질문에 좋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겁니다. 싫다고 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말이죠. 만약 아이가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면 부모는 격려해 줘야 합니다. "가치는 정말 용기 있는 아이구나. 네 모습을 보니 엄마가 안심이 된다"처럼 말이에요.
"싫어"라는 표현도 존중받는 경험은 아이에게 자신을 당당하게 지킬 수 있는 뿌리가 됩니다.
|아이의 '경계' 존중하고 지켜줘야
아이가 싫은 것을 인정하는 것은 아이의 '경계'를 존중하고 지켜주는 일입니다. 무조건 사이좋게 지내야 하고, 무조건 다가가야 하고, 무조건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좋은 관계 맺기가 아닙니다.
아이가 성장하며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도 경계를 허무는 행동을 가르쳐선 안 됩니다. 새로운 친구가 싫다고 했을 때 "왜 싫어", "왜 그래"라는 반응이 아닌, '싫어'·'안돼'라는 표현을 존중하며 존중받는 경험을 줘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을 당당하게 지킬 수 있는 뿌리가 됩니다. 일단은 인정하며 그 이유를 물어보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나 더 예를 들어볼게요. 친구와 놀이를 하다가 한 친구가 다른 친구의 손을 뿌리친 상황입니다. 이때 친구의 손을 뿌리친 아이에게 "너 왜 그래?"라며 안 좋게 얘기하는 것은 아이의 경계를 지켜주지 않는 겁니다.
그 대신에 친구와 손을 잡고 싶지 않은 것은 '인정'하면서도 가장 속상할 수 있는 친구에게 "오늘은 가치가 손을 잡고 싶지 않나 봐"라고 말해줘야 합니다. 이는 친구에게도 '손을 잡고 싶지 않을 때는 잡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손을 잡기 싫은 상황을 '인정'해 주는 속에서도 다른 방법을 고민하도록 해야 합니다.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싫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 말이지요. 아이가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하되, 혼자서 찾기 어렵다면 "'난 지금 손잡고 싶지 않아'라고 말해 보는 건 어때?"라며 부모가 얘기해 줄 수도 있을 겁니다.
상담=오명녀 제주도육아종합지원센터장, 취재·글=김지은 기자, 영상=신비비안나 기자
◇가치 육아 - 이럴 땐
한라일보의 '가치 육아'는 같이 묻고 함께 고민하며 '육아의 가치'를 더하는 코너입니다. 제주도육아종합지원센터 오명녀 센터장이 '육아 멘토'가 돼 제주도내 부모들의 고민과 마주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영유아 양육 고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전문가 조언이 필요한 고민이 있다면 한라일보 '가치 육아' 담당자 이메일(jieun@ihalla.com)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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