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소비의 많은 부분이 의료비 지출로 이뤄지는 연령대가 되면서, 새삼 좋은 의료진과 의료제도를 갖춘 우리나라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1946년 영국에서 시행된 의료보험제도와 프랑스, 독일의 좋은 점만을 배워서 적용한 국민건강보험만으로도 우리나라에 살 이유는 충분하다.
셜록 홈스를 의사에 접목한 미국 의학 드라마 '닥터 하우스'를 보면, 검사 데이터와 증상을 가지고서 특이 질환의 원인과 치료법을 추론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담고 있다. 하지만 미국 모든 국민이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수준의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미국의 건강보험은 대부분 사기업에서 운영하고 있어서 상품별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 의사, 치료 범위와 투약 조건이 다르다. 정부의 의료보험을 받으려면 가난하거나 아니면 노년층이 돼야 한다.
로스앤젤레스의 인종 갈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다룬 '크래시'(2004)에서 경찰관 맷 딜런의 아버지는 요로감염의 치료를 한 달 넘게 받고 있으나, 차도가 없고 밤새도록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려 애쓰고 있지만, 맷 딜런의 의료보험은 응급실을 이용하는 비용도 보장하지 못하고, 지정한 의사를 벗어나서 전립선에 이상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어렵게 한다.
'존 큐'(2002)에서 덴젤 워싱턴은 아들의 심장이식 수술비 3억5000만원을 직장보험에서 커버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아들을 그냥 죽일 수 없어서 병원 응급실에서 인질을 잡고 아들을 이식 대기자 리스트에 올려 달라고 요구한다.
미국식 의료보험 제도가 그려내는 미래의 모습은 '엘리시움'(2013)의 세계이다. 지구는 버려지고 상위 1%의 사람들은 지구 밖 우주에 건설한 인공행성에서 살아가면서 집마다 MRI 같은 기계로 몸의 이상을 치유한다. 나머지 99%는 환경오염과 자원고갈, 인구 폭증의 지구에서 로봇과 AI 상담원의 통제하에 살아간다. 미국식 의료보험제도에 비판적인 위의 두 영화에서 모두가 엘리시움의 시민이 돼 치료받게 되도록 시스템을 초기화하거나, 수술 의사는 자신의 인건비를 받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돈을 거두고, 병원에서도 병원비를 깎아주는 등의 방법으로 탐욕스러운 시스템을 비껴간다.
미국의 민간의료보험 제도의 문제를 다룬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2008)에서는 '내부자들'(2015)에서 조우진이 사람을 고문하면서 "여기 하나 썰고" 하듯이, 손가락 접합은 얼마, 발 골절은 얼마 식으로 견적서가 환자에게 주어지고 환자는 형편에 따라서 치료를 선택한다. 911 테러에서 구조활동을 한 소방관들도 만성화된 질환의 치료를 받지 못하자 마이클 무어는 이들을 데리고 미국의 적성국 쿠바에 가서 치료받게 한다.
무엇보다 아프지 않은 게 최고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의 가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가 더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김정호 경희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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