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주인의 건강보고서 Ⅷ 건강다이어리] (159)기면병

[제주, 제주인의 건강보고서 Ⅷ 건강다이어리] (159)기면병
일상생활 중 갑자기 쏟아지는 졸음… 기면병일 수도
  • 입력 : 2025. 12.12(금) 02:00
  •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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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위해 전문 수면검사 필요
의지부족 아닌 ‘뇌 기능’ 문제
약물치료와 규칙적인 생활로
일상적인 기능 회복 가능해

[한라일보] 낮에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 회의 중 고개를 떨구거나, 심지어 식사나 대화 도중에 의식이 스르르 사라지듯 잠들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증상이 반복된다면 단순한 피로나 생활습관 문제가 아니라, '기면병(嗜眠病·narcolepsy)'일 수 있다. 기면병은 환자의 일상과 삶을 크게 흔들어 놓는 대표적인 수면 질환이다. 이번 주 제주인의 건강다이어리에서는 제주대학교병원 신경과 오정환 교수의 도움을 받아 기면병의 원인, 증상, 진단, 관리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기면병이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졸음·마비'를 뜻하는 narco와 '발현·발작'을 뜻하는 lepsy가 합쳐진 말로, 이름 그대로 예기치 않은 졸음 발작이 특징이다. 1880년 프랑스 의사 젤리노(Gelineau)가 처음 보고한 이후 수면 의학의 주요 연구 대상이 됐으며, 지금도 활발히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l 얼마나 흔한 병일까?

미국과 서유럽에서는 인구 1만 명당 218명꼴로 나타난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에서는 같은 인구 규모에서 1618명 정도로 보고돼 서양보다 발생률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드물지 않은 질환으로, 실제 진료 현장에서 종종 발견된다.

오정환 제주대병원 신경과 교수

l 뇌 속 신경 단백질 '오렉신'이 열쇠

기면병의 가장 큰 원인은 뇌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신경 단백질 '오렉신(히포크레틴)'의 부족이다. 오렉신은 뇌를 깨우고 각성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물질이 부족하면 깨어 있어야 할 낮에도 졸음을 견디지 못한다.

졸음은 긴장이 풀린 상황에서 잘 나타난다. TV를 보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처럼 조용한 환경은 물론, 심할 때는 식사 중, 걸을 때, 심지어 대화 도중에도 갑자기 잠이 쏟아진다. 이런 모습 때문에 주변에서는 게으르거나 불성실하다고 오해하기 쉽다.



l 단순한 '졸림병'이 아니다

기면병 환자들은 단순히 낮에 졸린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강한 감정 반응(웃음, 놀람 같은 감정자극)에 갑자기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탈력발작' ▷수면마비(가위눌림) ▷잠들거나 깰 때 나타나는 생생한 환각 같은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특히 탈력발작은 넘어져 골절이나 외상을 입을 위험이 있어 안전에도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낮에 그렇게 졸린데도, 정작 밤에는 깊은 잠을 유지하지 못한다. 자주 깨고 뒤척이며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면병 환자는 낮과 밤 모두 수면에 문제가 생겨 만성 피로와 집중력 저하를 겪는다. 비만이나 수면무호흡증, 잠꼬대, 주기적 사지 움직임 같은 다른 수면장애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l 어떻게 진단할까?

기면병은 단순한 '과로'나 '습관성 졸림'과는 전혀 다른 질환이므로, 스스로 판단하거나 인터넷 정보만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전문가의 진단이 필수적이다.

진단의 출발점은 환자의 병력이다. 낮 동안의 과도한 졸림과 탈력발작 여부가 핵심 단서다. 그러나 이런 증상은 다른 수면장애(수면무호흡증, 불면증)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수면 검사 없이는 기면병을 정확히 구별할 수 없다.

이를 위해 병원에서는 ▷밤 동안의 뇌파·호흡·근전도 등을 측정하는 수면다원검사와 ▷낮 동안 2시간 간격으로 낮잠을 재우며 잠드는 시간과 렘수면 출현 여부를 평가하는 수면잠복기반복검사를 시행한다. 이 두 가지 검사가 기면병 확진의 핵심이다. 드물게는 뇌척수액에서 오렉신 농도를 측정하기도 하지만, 검사 자체가 어렵고 침습적이어서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따라서 기면병이 의심된다면, 단순히 '피곤해서 그렇겠지'하고 넘어가기보다 반드시 수면 질환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조기 진단과 치료 시작이 환자의 일상 회복에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l 완치는 어렵지만, 조절은 가능하다

아쉽게도 기면병은 아직 완치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약물과 생활 관리로 증상을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낮 동안의 졸음에는 모다피닐이나 메틸페니데이트 같은 각성제를, 탈력발작에는 항우울제를 사용한다. 약물 치료 외에도 일정한 취침·기상 시간을 지키고, 낮 동안 짧게 계획된 낮잠을 자는 등 규칙적인 생활습관이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는 주로 증상 조절 중심의 치료가 이루어졌지만, 최근에는 기면병의 근본 원인인 오렉신 결핍을 직접 겨냥하는 신약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약물이 머지않아 승인된다면 단순히 졸음을 완화하는 수준을 넘어, 기면병의 병태생리를 근본적으로 겨냥하는 새로운 치료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l 사회적 이해와 배려가 필요

기면병 환자들은 종종 나태하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기면병은 뇌 속 특정 물질이 부족해서 생기는 의학적 질환이다. 따라서 환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 동료, 친구 등 사회 구성원 모두가 올바른 이해와 배려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꾸준한 치료와 생활 관리, 그리고 사회적 지지가 함께한다면 기면병 환자도 충분히 정상적인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

<오정환 제주대병원 신경과 교수>



[건강Tip] 동지, 팥죽으로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기

동지(冬至)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로, 해가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예로부터 동지에는 악귀를 쫓기 위해 팥죽을 먹는 전통이 있다. 붉은색을 띠는 팥은 악귀를 물리친다고 믿어졌고, 동지에 팥죽을 먹음으로써 한 해의 액운을 쫓고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팥은 영양 성분 함량이 높은 식품으로 단백질, 식이섬유, 비타민 B군, 철분, 칼슘 등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팥에 풍부한 식이섬유는 소화 건강에 도움을 주고, 혈당 조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팥은 곡류 중에서 비타민 B1 함량이 가장 많은 식품으로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히 권장되는 식품이다. 쌀에 부족한 비타민 B1은 탄수화물을 에너지로 바꾸는데 꼭 필요한 성분이며, 부족하면 식욕부진, 피로감, 수면장애, 기억 감퇴 등의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팥의 효능 중에 잘 알려진 것이 이뇨 작용인데, 팥에는 인삼에 많은 사포닌 성분이 포함돼 있어 체내 수분 배출을 돕는다. 또한 칼륨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나트륨 배설을 도와 염분으로 인한 부기를 빼는 데 효과적이다.

사포닌 성분은 팥에 들어 있는 섬유질과 함께 장을 자극해 변을 잘 보게 해주기 때문에 변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팥에 함유된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는 뛰어난 항산화 성분으로 체내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노화 방지 및 만성 질환 예방에 도움을 준다.

팥을 고를 때는 붉은색이 선명하고 껍질이 얇으면서 손상된 낱알이 없는 팥을 선택한다. 국산 팥은 낱알의 크기가 고르지 않고, 흰색 띠가 뚜렷하다. 반면에 수입 팥은 낱알의 크기가 작고 고르며 흰색 띠가 짧고 뚜렷하지 않으니 꼼꼼히 비교해보고 구입하도록 하자.

팥은 껍질이 단단해서 6~8시간정도 불린 후 삶아야 부드럽다. 처음 삶은 물은 따라 버려야 하는데, 이는 팥의 사포닌 성분이 특유의 씁쓸한 맛을 내기도 하고, 위장이 약한 경우에는 배탈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팥을 삶아 으깨서 체에 걸러주고 찹쌀가루를 물에 풀어 팥물과 함께 끓이면 맛있는 팥죽이 된다. 기호에 따라 설탕이나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좋다. 삶은 팥에 우유를 넣고 갈아 팥스프로 이용해 봐도 좋겠다. 팥죽이나 팥스프 위에 다진 견과류나 코코넛 가루를 뿌리면 고소함과 함께 풍미가 더해지니 활용해 보자.

올 겨울, 동지의 의미를 되새기며 온 가족이 함께 따뜻한 팥죽으로 건강과 행복을 챙겨보길 바란다. <제주대학교병원 영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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