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1848년 12월, 미국 조지아주 메이컨에서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대담한 탈출극이 시작됐다. 흑인 노예 신분이었던 엘런과 윌리엄 크래프트 부부가 자유를 찾아 북부 필라델피아로 향하는 목숨을 건 여정에 오른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우일연(Yiyun Li)이 펴낸 두 번째 책 '주인 노예 남편 아내(Master Slave Husband Wife)'는 이 믿기 힘든 실화를 바탕으로 억압에 맞서 자유를 선택한 인간의 보편적 투쟁과 사랑의 기록을 생생하게 전한다.
이 작품은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 타임지 '필독서'로 선정되며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2024년에는 우일연 작가가 이 책으로 한국계 작가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책은 부부가 북부로 향한 나흘간의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들의 탈출 계획은 기발하면서도 위험천만했다. 피부색이 밝았던 아내 엘런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녹색 안경을 쓴 채 병약한 백인 남성 '주인'으로 변장했다. 글을 쓸 줄 몰랐던 엘런은 서명을 피하기 위해 팔에 붕대를 감았다. 남편 윌리엄은 그의 곁을 지키는 충직한 노예로 위장했다. 그렇게 부부는 어둠을 틈탄 도주가 아닌, 오히려 가장 '백인다운'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길을 택했다.
부부는 기차와 증기선, 최고급 역마차를 이용해 당당히 북부로 향한다. 그러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찔한 순간들은 계속된다. 기차 출발을 앞두고 소유주가 역에 나타나는 위기, 달리는 열차 안에서 정체를 의심하는 시선들, 악명 높은 노예 상인과의 예기치 못한 조우까지 여정 내내 긴장은 끊이지 않는다. 책은 이 나흘을 한 편의 스릴러처럼 밀도 있게 따라간다.
그동안 미국 문학계에서 노예제와 남북전쟁은 백인 주류 역사학자나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들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우 작가는 이 경계를 넘어 크래프트 부부의 탈출 실화에 주목하며 피부색과 인종, 계급이라는 미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제3자의 시선으로 냉철하게 분석하고, 절제되면서도 열정적인 문체로 재조명했다.
노예제는 사라졌지만, 이데올로기와 혐오로 분열된 오늘의 세계는 여전히 이 서사를 현재형으로 만든다. 억압을 벗어나 자유를 선택한 인간의 이야기로서, 그리고 사랑과 연대가 만들어낸 기적의 기록으로서 '주인 노예 남편 아내'는 지금 다시 읽힐 이유를 분명히 보여준다.
엄격한 역사적 고증과 소설적 긴장감을 결합해 부부의 이야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우 작가는 "이 이야기는 미국 이상의 무언가를 다룬다"면서 "한국인들에게도 공감을 끌어낼 만한 보편적 주제인 '불의에 대항한 투쟁'이다"라고 말한다. DROM(드롬). 2만2000원. 김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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