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호의 문화광장] 탐라문화제, 그 자체가 킬러 콘텐츠

[홍정호의 문화광장] 탐라문화제, 그 자체가 킬러 콘텐츠
  • 입력 : 2026. 04.14(화) 02:00
  • 홍정호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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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탐라문화제는 제주인의 가슴속에 영원히 흐르는 문화적 혈맥으로서 탐라의 전통은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미래다. 지역 공동체의 화합과 예술인들의 열정이 살아있는 한, 탐라문화제는 그 자체로 이미 대체 불가능한 제주의 문화적 저력이자 정체성이다.

탐라문화제를 두고 매년 해묵은 비판이 반복된다. 볼거리가 부족하다느니, 백화점식 나열에 그쳐 정체성이 모호하다느니 하는 지적들이다. 들불축제의 화려함이나 벚꽃축제의 대중성을 예로 들며 탐라문화제도 이른바 '킬러 콘텐츠'를 발굴해 대전환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필자는 동의할 수 없다.

우선 탐라문화제를 경관 축제인 벚꽃축제나 이벤트성 축제인 들불축제와 비교하는 것부터가 오류다. 벚꽃축제는 자연의 일시적 아름다움을 소비하는 관광형이고, 들불축제는 강렬한 시각적 연출을 앞세운 퍼포먼스형이다. 반면 탐라문화제는 제주의 신화, 역사, 민속을 집대성한 민속축제다. 민속 축제의 생명은 눈을 현혹하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뿌리를 확인하고 전승하는 고집스러운 정통성에 있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 유입을 위해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 인프라 또는 특정 장소 하나를 선정해 대표성을 키워나가자는 주장과 다름이 없다. 다양성 대신 단일성을 택하자는 이러한 논리는 문화적 생태계에서 멸종의 시작을 부르는 최악의 선택이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로컬 축제들을 보라. 8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시에나의 팔리오(Il Palio)나 일본 교토의 기온 마츠리는 변화보다 반복과 재현에 목숨을 건다. 마을 대항 경주나 수레 행진 같은 형식을 수 세기 동안 유지하며, 그 과정에서 지역민의 자부심과 유대감을 강화한다. 박물관에 박제돼야 할 유물들이 거리로 나와 숨 쉬는 모델, 그것이 로컬 축제의 진정한 힘이기 때문이다.

백화점식 나열이라는 비판 역시 시각을 바꾸면 '살아있는 박물관(Living Museum)' 모델이 된다. 제주의 문화는 해녀, 목축, 신화, 민요 등 어느 하나를 떼어 설명할 수 없는 유기적 결합체다. 이를 자극적인 특정 테마로 압축해 킬러 콘텐츠화하려는 시도는 제주의 다채로운 표정을 지우는 문화적 거세와 다름없다. 탐라문화제는 제주의 서사와 제주의 삶을 구성하는 향연이자 제주의 조각들을 한데 모아 공동체의 원형을 확인하는 자리다. 가벼운 입의 주장이 아니라 가슴으로 탐라인의 삶과 문화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

축제의 진정한 성패는 방문객 수라는 숫자가 아니라, 참여하는 지역 예술인과 읍·면·동 주민들이 얼마나 자긍심을 느끼느냐에 달려 있다. 탐라문화제는 행사를 위해 기획된 세련된 상품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삶과 땀이 녹아든 마당이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을 현혹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제주인의 영혼을 오롯이 담아내는 '킬러 스피릿(Killer Spirit)'이다. <홍정호 Universal Edition 소속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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