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얼마 전 다리를 다쳐 며칠간 집에서 지냈다. 집 안에서의 생활이 답답한 것보다 식재료 구입이 더 걱정됐다. 온라인 주문과 배달을 이용했지만, 편리함 뒤에는 포장재와 비닐 등 쓰레기 문제가 있었다. 내가 버린 쓰레기들이 정말 재활용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분리수거를 하던 중 '비닐류 OTHER'라는 표시를 발견했다. 알아보니 비닐류 OTHER는 2가지 이상의 재질을 혼합해 만든 플라스틱 재질로 즉석밥 용기, 배달 플라스틱 등에 쓰인다고 한다. '재활용의 거짓말'에서는 플라스틱을 재질에 따라 1~6번까지 분류하지만, 재질이 혼합되거나 분리가 어려운 포장재는 OTHER, 7번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또한 비닐로 분리배출은 하되 소각을 통해 열에너지로 사용된다고 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분리 배출되는 플라스틱 중 OTHER 비중은 20~30%이나 다시 자원화되는 비율은 10% 미만이라고 한다. 즉, 우리는'재활용'을 한다고 믿지만 실상은 태워 없애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높은 재활용률 통계 역시 착시가 있다. OECD와 EU, 미국은 폐기물을 다시 원료로 사용하는 물질 재활용 중심으로 계산하지만, 한국은 소각 후 열에너지로 활용하는 방식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한국의 재활용률은 80%를 넘지만, 유럽과 미국은 대체로 25~48% 수준으로 집계된다. 한국이 훨씬 앞선 것처럼 보이지만, 기준 자체가 다르다.
문제는 이러한 포장재가 단순한 쓰레기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이슈화되는 PFAS(과불화화합물)는 기름과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종이컵, 햄버거 포장지, 배달 용기 등에 사용된다. 이는 자연에서 거의 분해되지 않아 '영원한 화학물질'이라고도 불리는데, 일부 연구에서는 PFAS가 인체에 축적돼 면역체계 이상, 호르몬 교란, 암 발생 가능성과도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편리함을 위해 사용한 일회용 포장재가 다시 환경을 거쳐 우리 몸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이제는 환경정책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소비자의 분리배출과 지자체의 처리 시스템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쓰레기가 만들어지기 전 단계에서의 관리다.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은 생산하지 않도록 하고, 기업이 포장재의 생산·회수·재활용까지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강화해 재활용이 어려운 복합 포장재에 더 높은 비용을 부과하고 있다. 제주 역시 재활용이 어려운 포장재와 PFAS 사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
제주의 환경 문제는 곧 생존의 문제다. 지하수와 해양, 농지가 촘촘히 연결된 섬에서는 오염물질이 축적될 경우 쉽게 회복되기 어렵다. PFAS와 플라스틱 문제는 단순한 쓰레기 이슈가 아니라 제주 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이 쓰레기를 처음 만들었는가'. 진짜 순환경제는 소비자에게만 책임을 요구할 때가 아니라, 기업의 생산방식과 정부의 제도가 함께 바뀔 때 시작될 것이다. <주현정 제주연구원 지속성장연구실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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