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지명 2026.08.13 (20:22:44)삭제
서럽고 슬픈
결핍의 순간이 나에게만
찾아오는 불행일 거라는
내 안의 수치심으로
무너져 내리기도 했던 많은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래도 견뎌낸 나의 삶의
시간들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도
실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과거일 뿐이었는데...ㅎ
이 또한 지나리라...
정말 잠시 유행이었을 뿐
결국 나의 그래도 잘 살아난
단단한 삶의 베이스가 되어 준
감사한 추억이었음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
| 최영재 2026.08.13 (17:30:28)삭제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더 큰 마음 가져야지. 일희일비 하지 말아야지.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
| 최영재 2026.08.13 (17:30:23)삭제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더 큰 마음 가져야지. 일희일비 하지 말아야지.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
| 오장근 2026.08.12 (14:58:13)삭제
'기억의 연대'라는 말이 있다. 그 기억이 좋은 기억이든 고통스런 기억이든 인간은 '기억'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동물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몇 십 년을 넘나들며 부모와 자식간에 형제와 형제간에 혹은 타인과 타인간에 그 기억은 끊임없이 '현재화'를 향해 나아간다. 오늘 한상희 선생님의 칼럼은 기억의 '현대화' 또는 '현재화' 그 지점에 있다. 독일의 역사학자 알프 뤼트케는 ‘일상의 역사’를 강조하였다. 4․3은 분명 거대한 역사적 사건임에 분명하지만 그 속에서 개개인이 감내했거나 당했던 폭력은 일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지배적 시각이 아닌 일상의 시각, 위로부터의 치유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치유에서 바라보고 그 아픔을 같이하는 ‘연대’, 뤼트케가 말한 역사의 핵심은 그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 아픔은 어떤 식으로든 나누고 ‘연대’할 때 비로소 ‘인간다움’과 ‘살아있음’이 그 본연의 색을 찾으리라. 한상희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어쩌면 일상처럼 지나쳤을‘연대’를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긴다. |
| 한옥림 2026.08.12 (14:20:46)삭제
그 시절 우리의 제주 유년시절은 육지보다 더욱더 빈곤했죠.
지금은 이렇게도 풍요롭건만. 결핍이 주는 불편함도 이겨보고 실천하려 애써봅니다.
한상희 선생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정용주 2026.08.12 (10:00:40)삭제
한상희의 ‘짝짝이 양말’ 기억은 개인 유년담을 넘어 국가폭력·지역사·가족사가 한 순간에 응축된 벤야민적 역사몽타주이다. 제주4·3의 파괴는 어머니의 생존과 “다 왔는지”라는 반복적 확인 속에 잔존하며, 과거는 연대기적 시간 밖에서 파편처럼 현재로 침투한다. 벤야민의 ‘지금-시간’처럼 기억은 축적된 과거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 번쩍이며 현재를 중단시키는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래서 한상희에거 짝짝이 양말은 결핍의 표지가 아니라, 역사적 잔해 속에서 의미를 재배치하는 알레고리이며, 수치의 시간을 유희로 전환하는 미학적 구제의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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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상 2026.08.12 (08:59:03)삭제
갑자기 한쪽 장갑만 끼고 춤을 추던 마이클 잭슨이 생각나네요. 빵터졌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