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중산간 마을에 물과 길 없었다는 것은 오해"

"제주 중산간 마을에 물과 길 없었다는 것은 오해"
'웃드르의 기억, 제주 중산간의 생활문화사' 콘서톡
진관훈 박사 "물 좋아 화전 발달… 화전로드 있었다"
  • 입력 : 2026. 10.18(일) 14:34
  • 백금탁기자 haru@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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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훈 경제학박사가 '웃드르의 기억, 제주 중산간의 생활문화사' 콘서톡을 통해 제주 중산간 '웃드르'의 형성과 화전·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백금탁기자

[한라일보] "제주 중산간 마을에 물이나 길이 없었다는 것은 큰 오해죠. 제주 중산간은 19세기 후반 발발한 방성칠의난 등 제주 3대 민란, 일제강점기, 제주4·3에 이르는 핍박과 비극의 역사는 물론 중산간 개발사가 응축된 곳으로 그동안 제대로 조명이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진관훈 경제학박사(제주지식산업센터장)는 지난 16일 제주콘텐트진흥원에서 열린 '웃드르의 기억, 제주 중산간의 생활문화사' 콘서톡을 통해 제주 중산간 '웃드르'의 형성과 화전 및 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중산간 마을의 생업(목축업)을 통해 제주 고유의 생활문화를 들여다보고, 4·3 당시 사라진 마을의 기억을 돌아보며 중산간에 남겨진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진 박사는 "제주의 물 문화와 마을 형성은 해안가 용천수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말은 70%만 맞다"며 "중산간에서도 샘과 하천, 우물, 연못, 소(沼) 등을 활용해 생활하고 화전이 발달했다. 특히 절물을 비롯해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나 봉개동 소재 회천동, 서귀포시 회수동 등의 지명에도 물이 좋았다는 흔적이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황토를 발라 물을 가둬 저장했고, 용암지대 빌레지대를 활용해 연못을 만들어 생활용수나 농업용수로 사용했던 옛 조상들의 지혜를 들려줬다. 또한 1899년 제주군읍지 제주지도 상의 10소장 인근 화전마을(9곳)을 비롯해 4·3 이전의 중산간 마을(30여곳)을 확인할 수 있는 1918년 조선 오만분의일 제주지형도, 그리고 1967년도 위성사진 등을 통한 제주 중산간 마을의 변천사도 보여줬다.

진관훈 경제학박사가 '웃드르의 기억, 제주 중산간의 생활문화사' 콘서톡을 통해 제주 중산간 '웃드르'의 형성과 화전·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백금탁기자

특히 진 박사는 중산간 마을에서의 길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중산간 마을 주민들은 해안가와 결절·고립돼 살았다는 것 또한 오해"라며 "길도 잘 발달돼 중산간 마을 모두가 연결돼 있었고, 이 길은 고립이 아닌 소통의 길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에 "실제 사례로 하원·도순~시오름·미악산 등을 연결하는 이 길을 가칭 '화전벨트'나 '화전로드'라고 말 할 수 있다"며 "최근 서귀포시 연저골에서 구르마 2대가 교행 가능한 폭 4m의 길 흔적을 현장탐사를 통해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진 박사는 "그동안 중산간 마을이 사상이나 난개발 등에 덮여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며 "중산간은 엄연히 제주의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주의 역사적 공간"이라고 되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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