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23)한림읍 한림1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23)한림읍 한림1리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으뜸정신 가득한 마을
  • 입력 : 2026. 10.16(금) 02:00
  • 양기훈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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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구전으로 내려오는 미담이 있다. 오래지 않은 과거에 바닷가에서 풍랑에 밀려 인근 갯바위에 좌초된 선박을 마을 사람들이 달려들어 어부들을 구조하고 살려냈다는 이야기. 한 번뿐이었을까? 측은지심, 그 인정미 넘치는 사람들이 어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었을 터.

함학수 이장

한림읍의 중심지 위상을 가진 이 마을은 옛 이름 마두포의 발전에서 비롯한다. 바다에 풍랑주의보가 있으면 인근 해역에서 조업하던 배들이 피항해 몰려드는 곳. 오랜 기간 반복되는 이러한 과정들로 인해 남해안 일대에서 어부들에게는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당연하게 어획물들을 거래하는 시장도 융성하게 되고 그 규모가 여타 보통의 읍면지역 항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보니 지역경제는 그 영향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 경쟁력의 중심에 한림1리가 있은 것. 주민수가 2800명에 육박하는 도시형 마을이다.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와 상업활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고유의 마을공동체 시스템이 작동되는 애향심 강한 마을.

1884년 당시 3백 가구 넘는 인구가 살고 있었으니 작은 마을이 아니다. 처음 마을 명칭은 숲이 많다는 뜻으로 다림(多林)동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교육열이 강했던 마을 분위기 때문에 선비들이 많이 배출되자 한림(翰林)이라고 바꿔 부르게 됐다고 한다. 翰林學士와 같은 걸출한 선비와 학자가 새의 깃털처럼 많이 배출되기를 열망하던 마음이 오롯이 '한수풀'이라는 지명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출향 인사들 중에서 걸출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것은 유년시절부터 어른들에게 들어온 마을 명칭의 의미가 어떤 집념으로 작용하였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마을이 번창을 거듭하고 유입인구가 급증하는 과정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향토애가 남다르게 강한 것은 그 이유를 따지기에 앞서서 귀납적으로 판단함이 옳다. 향토애가 많은 다양성을 포용하는 에너지가 돼 오늘의 발전을 이룩했다는 사실로. 이러한 정신문화를 보유한 마을에 당연하게 있어야 할 것으로 알고 있었던 다목적회관이 없었다. 그동안 행정당국에서 너무 큰 마을이라 등한시한 것은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연중 예닐곱 번 정도 마을 주민들이 모이는 행사를 하려고 해도 공용공간이 협소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라고 한다. 비단 회의장소로써의 기능만이 아니라 교육프로그램, 어르신행사, 문화 복지프로그램을 통한 주민화합행사 등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당면 과제다. 마을의 역할은 시대정신에 대한 반영을 통해 다각화되고 발전 방향을 찾아가는 것, 한림1리가 지역경제에 끼치는 역할과 영향을 염두에 둔다면 행정당국에서 이 다목적회관 건립에 적극 지원하고 나서야 할 것이다.

함학수 이장에게 한림1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한 단어로 대답했다. "으뜸정신" 물려받은 정신유산이니 후세에게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거창한 의미에 앞서 조상들의 생활 속에서 강조하던 실천 자세다. 제주어로 '졸바로' 뭔 일을 해도 똑부러지게, 누가 봐도 제대로 했다고 인정할 정도로 일을 하면 완벽하게 하라는 가르침. 승부근성이 강하다는 외부의 인식이 여기에서 비롯하였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마인드다.

마두포의 발전이 어업경제의 상징 한림항이 됐고 한림1리의 미래 또한 한림항의 발전전략과 직결된다. 한림외항 확장공사에 대한 중장기 발전구상은 10여 년 전부터 있어왔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는 막막한 현실이다. 한수리 지경 톤대섬에서 서쪽으로 뻗어나간 방파제가 팔 한쪽이라면 마을 서쪽 경계지점에서 북쪽으로 뻗어나가 동쪽으로 굽어드는 팔 한쪽이 있어야 어선들을 대규모로 품을 수 있으니 한림항이 남해안 일대 어선들의 거점 항구로 그 위상을 유지하려면 시급하게 외항공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미 포화상태에 있는 항구이며 제주서부지역 물류의 중심지라면 대형 화물선과 여객선들이 접안할 수 있는 규모의 항만이 돼야 하는 현실이다. 희망 사항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시각예술가>





한림초등학교 나무들
<수채화 79㎝×35㎝>


2023년 9월 1일에 한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조형물을 세우고 그 뜻을 이렇게 적었다. '우리 학교는 1923년 일제강점기에 개교한 이래 역사적 혼돈기에도 항일, 독립운동을 하고 독재에 항거하는 등 선배들의 지혜와 슬기로움으로 100년 역사의 기틀을 다졌고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여 지역은 물론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으뜸학교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자랑스러운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한림초등학교 교훈 '으뜸정신을 발휘하자! 고운 마음과 재능을 갖춘 건강한 어린이'를 본받아 참다운 인성과 미래를 내다보는 지성을 겸비한 건강한 인재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만 육천여 동문의 바람을 담아 이 상징물을 세웁니다' 翰林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그 열망 '출중한 선비가 숲을 이루리라' 한수풀 그 자체가 교육열이라는 것을 지나온 마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에 다른 어떤 풍경보다 한림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나무들을 그렸다. 사람에게도 꿈이 있듯이 저 나무들에게도 꿈이 있다.

또한 나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묻고 싶어서 그린 것이다. 대답은 이러하다. 저 맑은 아이들의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과 같은 것이 저희들의 꿈입니다. 한림1리 어린이들뿐만이 아니라 주변 여덟 개 마을 어린이들이 이 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걸어서 멀리 다닐 수 없기에 작은 학교라도 있어야 했던 시대를 지나, 자동차 문화가 만들어내는 지역교육의 변화를 바라본다. 세월이 지나면 여기서 만들어진 인적 네트워크가 더 큰 꿈을 이룩하리라.



한림항에서 만난 풍경
<수채화 79㎝×35㎝>


상징성을 풍경화로 그린다는 것은 이런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한림항을 걸어가다 이런 이질적 대비효과와 마주하게 되었다. 거대한 선박용 기름 저장탱크의 모습들이 철재계단이나 난간들이며 파이프들을 시각적으로 제거하면 흡사 조형물에 준하는 노천 설치미술품으로 등장하게 되리라는 회화적 상상력이 발동하여 그리게 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림항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저 원기둥 모양 유류탱크들이다. 그림으로 그리기 전에 담당자를 찾아가 저장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200만 리터'정도라고 한다.

이 분야의 문외한이기에 상상이 되지 않는 물량이다. 한 달 정도면 전부 소진될 때도 있는 양이라고 하니 드나드는 선박이 얼마나 많은 지 객관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한 번 주유에 200리터 들어가는 배에서부터 6만 리터가 들어가는 배까지 선박유의 양이 설명해 주는 규모들. 항만의 크기와 면적 못지않게 빈번한 왕래를 하는 선박의 수를 그림으로나마 입증해주고 있다. 한림항의 위상이자 한림1리가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위치적 공헌이기도 하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시각적 위치이기에 파란 하늘을 크게 배치하였다. 마치 바다 대역이라도 하라는 생각으로. 생략을 통한 상징성을 풍경화라는 장르에서 표현한 것은 일상에서 상투적으로 만나는 것을 회화적 예술관점에서 새롭게 투영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수산경제에 필수 시설이 마을의 특징을 보여주는 역할이 된 것이다.

제작 지원=제주특별자치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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