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택의 한라칼럼] 조선 4대 표해록 통해 본 미지의 세계

[문영택의 한라칼럼] 조선 4대 표해록 통해 본 미지의 세계
  • 입력 : 2026. 10.27(화) 01:00
  • 문영택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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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바다는 풍성한 생존의 밭이고, 세상과 연결되는 길이고, 생명을 앗아 길 수도 있는 두려운 곳이다. 바다를 건너던 누구는 육지에 닿기도, 죽음에 직면하기도, 미지의 세계에서 돌아와 겪은 일을 글로도 남긴다. 이 기록이 표해록(漂海錄)이다.

조선시대 표해록 중 문학성과 역사성이 깃든 작품을 남긴 이로는,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으로 제주에 왔던 최부와, 애월 한담 출신으로 대정현감을 지낸 장한철과, 북촌리(뒷개) 출신으로 정조대왕의 충장위장(경호처 고위직)을 지낸 이방익과, 흑산도 홍어장수 문순득 등을 꼽는다.

1488년 부친상을 당해 고향 나주로 가던 최부는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 어렵사리 중국 절강성 연안에 닿았다. 육로와 운하로 북경까지 이동하는 동안 간첩으로 몰리고 도적을 만나는 등의 여러 경험을 기록한 최부는, 조선 최고의 표해록을 남겼다고 회자되는 인물이다.

1770년 한양에서 치르는 대과에 응시하러 바다를 건너던 중 풍랑을 만난 장한철은, 오키나와(유구국)의 호산도에 표류한다. 일본으로 향하던 안남(베트남) 상선에 구조된 장한철 등(29명)을 태운 쪽배는, 한밤중 청산도에서 난파되어 8명만 살아남는다. 이후 한양에 가서 과거에 응시하나 낙방하고 귀향한 장한철은, 고인이 된 일행을 추모하는 심정으로 그동안 겪은 경험을 기록한다. 장한철 표해록은 제주도 유형문화재(제27호)로 지정되어, 국립제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796년 국유목장인 우도로 향하던 이방익 일행은 보름 동안의 사투 끝에 대만에 표착한다. 중국 본토로 건너가 복건성을 통해 조선으로 돌아오는 여정에 대한 이방익의 기록과 경험담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이에 정조대왕은 당대의 석학 연암 박지원에게 서이방익사(書李邦翼事)를 쓰도록 한다. 정조 사후 이방익은 귀향하여 한글과 한자로 표해가와 표해록을 집필한다. 최근 권무일 작가의 이방익 표해록 발간에 힘입은 북촌리에서는'이방익 장군 기념사업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대만 팽호현 민속박물관 안내문에는, "1796년 조선 이방익 등 8인이 바람을 만나 팽호도에 표류하여 왔다. 다음 해 고국으로 돌아간 후'표해가'를 지었다."라고 적혀 있다.

1801년 흑산도에서 홍어를 사서 가던 중 표류한 문순득은, 유구·필리핀·마카오 등지를 거쳐 3년 만에 귀국한다. 그의 경험담은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 등의 기록에 힘입어 '표해시말'로 탄생한다. 필리핀 방언을 익힌 문순득은 제주에 표착한 여송인(필리핀) 통역차 제주에 오기도 했다.

풍랑이 거세게 일던 바다를 천우신조로 벗어나서는 중국 황제를 만나는 행운(최부·이방익)도 누린 이들이 남긴 표해록은, 바다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더하여, 극한 상황을 헤쳐나가려는 의지와 여태 접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기록하려는 마음 또한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점에 감사한 마음을 실어 그분들의 그날을 다시 그려본다. <문영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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