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39)] 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39)물, 물, 물! 생명의 원천 알타이

[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39)] 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39)물, 물, 물! 생명의 원천 알타이
알락 하이르한산, 종의 다양성으로 보호지구 지정돼
  • 입력 : 2017. 12.17(일) 19:00
  • 조흥준 기자 chj@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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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갓마을을 관통하는 개울, 하이르한산 정상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다. 사진=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서연옥·송관필·김진·김찬수

봉우리 중 가장 높고 만년설 볼 수 있어
부갓마을 가로지르는 물·강들의 발원지
뜨겁고 건조한 지역의 생명수 역할 맡아


김찬수 박사

아, 건조하다. 메마르다. 이렇게 바싹 마를 수가 있단 말인가. 아름다운 바늘두메자운 군락에 취해 있는 동안 차는 어느 큰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부갓솜이다. 알타이시에서 219㎞ 정도 떨어진 곳이다. 제주도 면적의 5배가 넘는 9921㎢의 면적에 2257명이 살고 있다. 인구밀도는 ㎢당 0.23명이다.

관공서도 있고 학교도 있는 곳이지만 마을이 크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그래도 여기서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으니 고마운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가장 인상 깊은 모습은 한 가운데로 물이 흐른다는 것이다. 주변은 온통 푸석푸석한 먼지투성이라고 할 정도로 말라 있는데 마을 한 가운데를 이렇게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른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점심을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 봤다. 이 개울을 방문하는 손님이 각양각색이다. 10대로 보이는 아가씨, 요리를 하다가 물이 모자라 길러왔을 법한 젊은 주부들과 그 손을 잡고 따라나선 꼬마들, 오토바이에 물통을 싣고 온 아저씨도 보이고 심지어 동네 개들까지도 끼리끼리 모여들었다. 솜 소재지인 부갓마을 뿐만 아니라 이 일대에서 두루두루 모이는 것 같다. 사막의 오아시스다.

이 물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마을이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물 때문일 텐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도 이 물 때문에 온건 지도 모른다. 우리가 도달할 알락 하이르한산은 생물다양성이 높아 몽골정부가 보호지구로 지정한 곳이다.

털봄맞이, 모든 식물들이 극도로 축소된 모습으로 만년설 지역의 식물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분앵초, 한라산에 자라는 설앵초와 닮았다.

알락 하이르한산보호지구는 부스산, 바르잔산, 알락 하이르한산, 부가 하이르한산, 바가 하이르한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외에도 많은 봉우리들로 되어 있는데 이 보호지구 내에서는 알락 하이르한산이 가장 높다. 만년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뜨겁고 건조한 곳에 눈은 오는 것인가. 그 눈은 어디에서 비롯하나? 2009~2010년 겨울에 큰 자연재앙으로 고통을 받은 적이 있다. 2009년 12월 30일에서 2010년 1월 7일 사이에 강한 눈보라가 이 지역을 덮쳤다고 한다. 이곳 부갓기상대 자료에 따르면 당시의 적설량은 저지대는 약 40㎝, 심한 곳은 60~70㎝, 산악에서는 1m에 달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타이의 산들은 험하기로 유명하지만 그저 건조라는 말밖에 모르는 이 일대에 생명이 살 수 있도록 촉촉하게 적셔주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 이 마을을 관통하는 물도 이 산들 중 알락 하이르한산에서 발원하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넓은 지역에 흐르는 수많은 용천수와 작은 강들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이 산에서 발원한 가장 큰 강은 알락 하이르한호로 유입하는 이흐강과 바가울랴스타이강이다. 이 물은 메마른 사막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주고 사람이 살 수 있게 하는 자연의 선물이 된다.

우리는 점심을 마치고도 한 시간 반이나 더 오른 끝에 드디어 알락 하이르한산에 도착했다. 오후 4시 30분이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4시간이나 조사할 수 있었으니 알타이신의 도움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알타이! 울란바토르에서 1200㎞, 한라산에서는 4500㎞, 무려 1만 리를 달려왔다.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 열파와 모래먼지가 뒤섞인 사막, 깊고 넓은 강을 건너 드디어 여기 알타이의 만년설까지 온 것이다. 여기는 알타이산맥 중에서도 종 다양성으로 유명한 알락 하이르한산, 정상은 해발 3739m이다.

글=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서연옥·송관필·김진·김찬수

이끼인가, 꽃피는 식물인가

만년설이 쌓여 있는 정상의 식물은 평지에 자라는 식물과는 판이하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물들을 만날 수는 없다. 우리는 너무나 다양하고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들의 세상을 향해 가고 있었다. 모든 대원은 말을 잃었다. 봐야할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기 때문이다.

지면에 바짝 붙어 자라는 방석별꽃.

그 중에 이런 식물도 있었다. 직경 10~30㎝정도의 방석모양을 형성하는 식물인데 높이가 불과 1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저 바위나 지표면을 번져나가는 이끼처럼 보였다.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있는 또 다른 표면 정도로 보였기 때문에 아무도 그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엄연히 꽃피는 식물로서 별꽃의 일종이었다. 스텔라리아 풀비나타(Stellaria pulvinata)다. 풀비나타가 쿠션 즉, '방석을 닮은'이라는 뜻이므로 방석별꽃으로 명명했다. 2012년 중국에서도 발견됐다지만 이 종은 알타이의 특산식물이다. 세계적으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종이다.

이와 혈연적으로 가까운 종으로 우리나라에도 8종이 있다. 그 중에는 별꽃, 쇠별꽃, 벼룩나물 등 3종은 한라산에도 자라고 있다. 큰별꽃, 긴잎별꽃, 실별꽃 등 3종은 함경남북도 등 북한지방에만 자란다. 이 일가가 알타이에서 백두대간을 거쳐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나뉘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닌 모양이다.

또 다른 이끼처럼 작은 식물체에 앙증맞도록 예쁜 꽃이 눈에 띈다. 안드로사케 인카나(Androsace incana)라는 종이다. 인카나가 털을 의미 하므로 털봄맞이로 명명한다. 우리나라에는 5종류가 있는데 그 중 봄맞이꽃과 애기봄맞이는 한라산에서도 자라고 있다. 고산봄맞이, 명천봄맞이 등은 함경남북도의 고산에 자란다. 이 종들도 역시 알타이에서 한라산까지 종에 따라서 저마다 한 지방씩 차지하고 있다.

많은 꽃들이 저마다 예쁜 모습으로 저요! 저요! 하고 손을 들지만 아쉽게도 다 보듬어 줄 수가 없다. 그래도 여기서 이 한 가지는 다시 쳐다보자. 프리물라 패리노사(Primula farinosa), 앵초의 일종이다. 학명의 패리노사가 '하얀 비듬으로 덮인'의 뜻을 가지므로 가루를 뜻하는 분앵초로 명명했다. 앵초 종류들은 고산에 자라는 종들이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에는 양강도에 자라는 종이 2종, 한라산을 포함해 남한에 자라는 것이 3종이다. 한라산 정상에는 설앵초가 자라는데 역시 앵초 집안도 알타이에서 백두대간을 거쳐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분포한다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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