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난 사람](2) 아내 장기기증 이상권씨

[토요일에 만난 사람](2) 아내 장기기증 이상권씨
“아내와의 약속 지켰죠”
  • 입력 : 2006. 07.29(토) 00:00
  • /표성준기자 sjpyo@hallailbo.co.kr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얼마전 천사같은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 이상권씨(왼쪽)가 두 아들과 함께 아내의 사진을 보며 지난날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있다. 이씨는 생전의 아내와 함께 “우리가 죽으면 장기를 기증하자”고 맹세했던 아내와의 약속을 지켰다./사진=김명선기자 mskim@hallailbo.co.kr

양가 모친 한집에 모신 착한 아내…세상 떠나자 ‘아름다운 인연’ 남겨

 한평생 심장병을 앓아오다 세상을 떠난 아내가 있다. 그리고 그런 아내의 장기를 기증키로 결심한 남편이 있다. 그들의 삶은 때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에 겨웠지만 아름다웠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삶을 함께한 그들이다.

 “천사같은 아내 먼저 떠났지만 사랑하는 마음만은 영원할 겁니다.” 이상권씨(42·제주시 애월읍)는 얼마전 아내 최애자씨(41)를 하늘나라에 보냈다. 하지만 아내의 장기는 지금 어딘가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의 아내는 심장병을 앓아오다 지난 6월 쓰러진 뒤 일주일간 뇌사상태로 머물다 숨졌다. 두 아들을 두고 있는 이들 부부는 평소 “우리가 죽으면 장기를 기증하자”고 맹세했다. 하지만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숨진 아내의 장기를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선뜻 내줄 수는 없었다.

 이씨의 마음을 움직인 건 아내의 큰 오빠. 처갓집 볼 면목도 없던 그에게 아내의 큰 오빠는 “동생처럼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자”고 권유했던 것. 장기기증 서약서에 서명해놓고도 사망하면 정작 실천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가족들의 결단으로 고인은 여전히 이 세상에 남아 있다.

 “아내는 천사였어요.” 양가의 막내인 이들 부부는 서로의 어머니를 한집에 모시고 살았다. 팔순을 넘긴 노인들을 아픈 몸으로 모신 아내가 그에겐 천사로 비쳐졌다. 어머니들도 이들 부부가 사는 집이 가장 편하다며 함께 지냈다.

 이제 아내가 떠난 집은 슬픔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들까지 떠나버려 휑하다. 하지만 아내가 생전에 가장 소중히 여기고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겨놓은 집을 그는 떠날 수 없다. 맘씨좋은 그가 보증을 섰다가 두번이나 집을 날리고 거듭되는 사업 실패 끝에 어렵게 장만한 집이라 더더욱 아내가 아꼈던 것이다.

 그는 지난 86년 대학 재학 중 당시 혼란스런 사회 상황으로 제적된 뒤 군에 입대했다. 89년 5월 전역 후 제주의 한 호텔에서 근무하다 92년 아내를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 어릴 때부터 심장병을 앓아온 아내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첫 아이를 유산한 끝에 어렵게 두 아이를 낳았다.

 “아프면서도 내색 한 번 않고 살았어요.” 지병에 시달리던 아내는 7년 전 마지막 수술을 결심했다. 반복되는 수술을 피하기 위해 반영구적이라는 기계판막을 몸에 심었고, 부작용을 막기 위해 1년 3백65일 약을 복용해야 했다. 하지만 아내는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10년간 친정어머니를 모신데다가 3년 전부터는 시어머니까지 함께 모신 여인의 웃는 얼굴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아내를 먼저 보낸 죄를 지었다”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넉넉한 ‘부처의 미소’가 흐른다.

 제주시내 마트와 시장에 김을 납품하는 이씨는 요즘 일이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향한다.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형편이다. 아이들 저녁을 차리고 빨래와 청소는 물론 숙제까지 챙겨주다 보면 어느새 밤이 깊어지고 녹초가 되곤 한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2 개)
이         름 이   메   일
5530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