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아이를 위한 미술관으로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아이를 위한 미술관으로
  • 입력 : 2008. 11.04(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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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가족을 품어안는 유명 미술관의 프로그램
도립미술관도 주목해야


하늘높이 솟아오른 빌딩들이 멋스런 야경을 만들어내던 늦은 밤. 시카고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만나러 시카고심포니센터로 가던 길이었다. 그 시간, 미술관 실내에도 불빛이 반짝 거렸다. 지난달 30일 저녁 7시20분. 미술관은 아직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미국에서 몇손가락안에 드는 미술관인 시카고미술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은 목요일 저녁마다 시민들에게 개방된다. 평소엔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하지만 목요일은 다르다. 밤 8시까지 문을 여는데 오후 5시 이후엔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입장료가 12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알뜰한 관객들에겐 목요일 저녁을 지나치기 어렵다.

미술관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가족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간에 잠깐 들렀더니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부모들이 몰려있었다. 같은 날 오전 찬찬히 미술관을 둘러볼 때다 더 많은 관람객들이 그곳에 머물고 있는 듯 했다.

미술관에서 잘 차려입은 중년 여성들을 여럿 만나기도 했지만 아이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접이식 의자를 들고 총총히 줄을 지어가거나 긴머리 여학생들이 전시장에 앉아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대화를 나누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는 유명 미술관들이 아이들을 소홀히 다루지 않듯, 이곳 역시 건물 한 층을 털어내 가족과 청소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문턱을 낮춘 친근한 문화공간으로 가동되고 있었다.

문득, 제주에서 얼마전 지어진 문화공간이 떠올랐다. 시설안에 어린이체험관을 만들었으면서도 준비 부족으로 지금껏 가동되지 않고 있어서다.

내년 상반기에 문을 여는 제주도립미술관이 얼마전 국립현대미술관과 손을 잡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미술작품 수집과 보존, 학예 연구, 교육, 마케팅 등 미술관 운영에 필요한 업무 추진을 위해 힘을 합친다고 한다.

어떤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하느냐에 무게를 싣는 것 못지않게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도 공을 들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공공미술관은 미술인만을 위한 문화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미술 작품을 보여주는 시설이 아니라 미술을 매개로 또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중 아이들이 좋아하는 미술관이 되길 기대해본다. 아이가 좋아하면 부모들도 자연히 따라나선다. 2백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건물을 짓고 작품을 사들였으면서도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지 않는 미술관이라면 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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