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탐라순력도'가 던진 과제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탐라순력도'가 던진 과제
  • 입력 : 2008. 11.25(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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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적 소재 무대화 값져도 도립무용단 공연 의욕 앞서
작품기획 등 시스템 점검을


제주도립무용단이 이번엔 '탐라순력도'를 들고 왔다. 지난 7월 추사 김정희의 삶을 담아냈던 무용단은 또한번 굵직한 소재로 무대에 올랐다. 탐라순력도는 제주목사 이형상이 제주섬을 순시할 때의 기록을 담은 화첩이다. 조선중기 제주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료다.

'탐라순력도-상상과 변용을 엿보다'란 이름은 적잖이 기대를 걸게 만드는 타이틀이었다. 지난 21일 저녁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탐라순력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의욕만 앞섰다.

도립무용단은 40여장의 화첩중에서 건포배은, 성산관일, 제주조점, 천연사후, 산장구마, 병담범주, 제주양로 등 7장을 골라내 춤사위로 풀어냈다. '2008년의 시점에서 상상을 통해 그림속의 장면을 변용'했다는 창작의도를 밝혔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대목이 있었다.

'건포배은(巾浦拜恩)'은 신당을 없애는 등 음사를 물리친 이형상의 '선정'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그림인데, 뱀에게 소녀를 제물로 바치는 악습을 퇴치하는 장면으로 상징화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김녕관굴(金寧觀窟)'과 연관이 깊다.

용연 뱃놀이를 담은 '병담범주(屛潭泛舟)'에서는 기생춤만 부각했는데 '탐라순력도'에 그려진 잠수들의 물질 장면, 주변 풍광까지 감안하면 어땠을까 싶다. 제주성 군기를 점검하는 '제주조점(濟州操點)'을 왜구 격퇴와 연결시킨 점은 그렇다치자. 왜구로 등장하는 무용수들의 모자 등 의상은 몰입을 방해했다. '산장구마(山場驅馬)'에 나오는 말을 두고 사슴처럼 보인다는 객석 반응이 나왔고, 기로연 풍습을 그린 '제주양로(濟州養老)'의 무대는 빈약했다.

이번 시도가 의미없는 것은 아니다. '제주적인'빛깔을 담아내려는, 쉴새 없이 변신하려는 무용단의 노력은 값지다. 하지만 그같은 움직임이 관객들의 가슴에 밀물처럼 가닿으려면 그만한 조직이 필요하다. 공연 기획부터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않으면 예산만 낭비하는 꼴이다. 지난 7월의 정기공연때처럼 이번에도 준비 기간이 턱없이 짧았다. 10월초에야 대본 의뢰가 이루어졌다. 상상과 변용에 필요한 탐라순력도의 맥락을 들여다보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지역 인력으로 스태프를 꾸리다보니 늦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공연을 코앞에 두고 무대 담당이 바뀌는 등 문제점이 드러났다. 차기작 준비가 늦어지면 작품에 예산을 맞추는 게 아니라 정해진 사업비로 꾸역꾸역 작업하는 일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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