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역사현장'일제전적지를 가다]아픈 역사를 미래발전 동력으로

['고난의 역사현장'일제전적지를 가다]아픈 역사를 미래발전 동력으로
잊혀진 전쟁의 기억·상처 서서히 드러나
  • 입력 : 2009. 01.01(목) 00:00
  • 이윤형기자 yhlee@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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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군사시설로 만들어진 송악산 알오름 거대 지하진지 입구.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태평양전쟁 시기 제주는 거대한 전쟁기지

내년 '경술국치 100년' 앞두고 관심 고조



2009년은 20세기 초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국권을 빼앗긴 '경술국치' 100년으로 가는 징검다리 해이다. 더불어 3·1만세운동 90주년을 맞는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해이기도 하다. 경술국치로 시작된 일제강점기 36년은 고통스런 역사로 점철됐다. 특히 제주는 한반도의 다른 그 어느 곳보다 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무엇보다 태평양전쟁(1941년12월~1945년8월) 시기 제주도는 하나의 거대한 전쟁기지였다. 세계평화의 섬이자 세계자연유산 제주는 그 이면에 고통스런 역사와 전쟁의 상흔으로 가득한 섬이다. 그 전쟁의 기억은 일제 패망 6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어둠속에 묻혀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쟁의 고통스런 역사와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국내외 학계와 언론에서 60여 년 전 제주도를 무대로 전개됐던 아픈 역사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군사시설이 구축됐나=제주도의 태평양전쟁 관련 일본군 군사시설은 다양하게 남아있다. 1945년 8월 당시 제주도 주둔 일본군은 약 7만5천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결7호작전'의 중심지인 제주도에 미군 등 연합군의 상륙에 대비해 수많은 군사시설을 구축했다. 그 종류도 모슬포 알뜨르비행장을 비롯한 군사비행장과 비행기를 감춰두기 위한 격납고 시설, 지하벙커와 토치카 시설, 고사포진지, 통신시설, 해안가 자살특공기지, 오름 등지의 지하 갱도진지 등 다양하다. 제주도내 산재한 3백68개 오름 가운데 현재까지 약 1백20개 오름에서 갱도진지 등 일본군 군사시설이 구축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어떤 의미를 갖고있나=식민지 상처와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태평양전쟁 관련 군사시설은 이제 그 자체가 일제 침략전쟁의 부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역사교훈의 장이 되고 있다.

제주도처럼 태평양전쟁 시기의 전쟁시설이 대규모로 집약돼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각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 본토보다도 오히려 제주도가 잘 남아있다. 규모면에서나 다양성 면에서 태평양전쟁의 실체를 보여주는 전쟁문화유적으로서 세계적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알뜨르비행장을 중심으로 활주로 및 격납고시설, 송악산 알오름의 거대 지하호, 자살특공기지 등이 반경 1km 이내에 밀집돼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제주는 세계적인 야외 전쟁박물관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세계전쟁문화유산으로 등재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서는 국내외 시민사회단체에서 답사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민간연구소 등에서 마련하는 역사교실은 일본군 군사시설이 필수답사코스로 되고 있다. 과거의 아픈 역사현장이 다크-투어리즘의 상징장소로 부각되면서 새로운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과제는 무엇인가=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태평양전쟁 시기의 군사시설은 아직도 그 전모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경술국치'로 표현되는 한일강제합병 100년과 일제패망 65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아직까지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있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언론 등에서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10여 곳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등록되고, 당국에서 학술조사에 나선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우선은 제주도 전역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어느 곳에 어떤 일본군이 주둔하고, 강제로 주민들을 동원해서 어떤 군사시설을 구축했는지 등에 대한 조사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일제 군사시설은 그동안 무관심속에 방치되면서 점차 훼손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어서 제주전역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구축실태 등을 파악하는 일이 급선무다. 이를 통해 등록문화재 등록대상을 확대시키고, 역사교훈의 장으로써 보존 정비 등 종합 마스터플랜을 수립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궁극적으로는 사회과 교과서에 이를 반영하는 작업도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통해 미래발전전략을 모색해 나가는 전향적 자세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윤형기자 yhlee@hallailbo.co.kr

▲어승생악에서 촬영에 나선 KBS역사추적 제작진(사진 위). 본보 일제전적지 탐사팀과 KBS역사추적 제작진이 송악산 해안 갱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아래).

[미니 박스]'경술국치 100년과 제주' 조명작업 준비해야

제주특별자치도·도의회 등 관심 지원 절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2010년 한일강제합병 100년과 관련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공영방송인 NHK는 '한국병합'과 관련된 특집을 준비하고 있으며, 시민사회에서도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나섰다. 학계에서는 일본사회의 최근 분위기를 볼 때 강제로 국권을 침탈한 한일합병을 정당시하는 논리가 나올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다. 국내에서는 동북아역사재단 등에서 준비에 나섰으나 아직은 미미하다.

'경술국치'에 이은 일제강점기 36년의 상처는 다른 어느 지역에 못지않게 제주도가 극심하다. 이를 반증하듯 한반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해녀항일투쟁과 조천만세운동, 무오법정사항일운동 등 치열한 독립운동이 벌어졌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중국대륙 폭격기지로, 이어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일본 본토결전에 대비한 전쟁기지로 거대한 군사시설이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 동안 제주는 변방이었으면서도 변방이 아닌 한반도의 역사와 태평양전쟁의 한복판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제주도와 제주도민의 고통스런 역사는 한반도의 역사와 세계사적인 의미를 갖는 태평양전쟁과 궤를 같이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부터 '경술국치 100년과 제주'를 평가하고 조명하는 사업을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등 당국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윤형기자 yhlee@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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