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법](1)바다를 누비는 이정자·추도상 부부

[이 사람이 사는 법](1)바다를 누비는 이정자·추도상 부부
"바다에서 희망을 낚았어요"
  • 입력 : 2009. 01.10(토) 00:00
  • 문미숙 기자 msmoo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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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관탈섬 인근 해역에서 10시간 넘게 방어잡이를 마치고 입항한 이정자·추도상 부부가 잡아온 방어를 끌어올리고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선원몫 인건비 아껴보려 일 시작
거센 파도 헤치며 세자녀 키워내
"기름값도 못건질 때가 가장 속상"


"오늘은 방어를 많이 못잡았어요. 요사이 며칠은 씨알도 작아요."

8일 오후 5시 애월항. 이정자(58)·추도상(60) 부부가 탄 6.62t 연안연승 양덕호가 도착했다. 새벽 4시에 출항해 관탈섬 인근에서 살을 에는 추위와 고된 뱃일을 방어를 낚아올리는 재미로 견딘지 꼬박 13시간만이다.

항구에 배를 대기가 무섭게 단골거래처인 횟집에서 차를 대고 펄떡거리는 방어를 사간다. 이날 잡은 방어는 모두 290마리다. 운좋은 날에는 씨알굵은 방어를 700~800마리까지 잡을 때도 있지만 어황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이씨가 남편과 함께 고깃배를 타기 시작한 게 1988년이니 벌써 20년이 넘었다. 지금이야 배를 타는 여성들도 제법 많지만 당시만 해도 그녀는 늘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뱃일이 워낙 고되서기도 하지만 예부터 여자가 배에 오르는 걸 금기시하면서 뱃일은 남성의 몫으로 여겨지던 게 오랜 관행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남편이 목선을 갖고 있었지만 선원 인건비를 떼주고 나면 다섯식구가 먹고살기가 어려워 배를 타기로 결심했어요. 뱃일은 한 시도 쉴틈이 없을정도로 고됐지만 커가는 자식들이랑 먹고 살려니 몸의 고단함이나 주변의 곁눈질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죠. 그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버텨냈던 거죠."

부부는 궂은 날만 아니면 배에 몸을 실었다. 지금 타고 있는 배는 12년전 직접 건조했다. 주로 관탈섬 인근이나 멀리는 추자도 인근 사수도 해역을 누비며 때론 만선의 기쁨을 맛봤고, 기름값과 미끼값도 못건질 정도로 실속없는 날도 여러날이었다. 하지만 그런 바다에 의지해 세 자녀를 대학에 보내고, 위로 둘은 결혼도 했다. 집도 장만하고 제법 여유로운 삶을 얻었다. 지난 연말엔 제주도지사가 주는 '장한 엄마' 표창도 받았다.

"20년 넘게 배를 타면서 힘든 고비가 왜 없었겠어요. 그 때마다 이를 악물었죠. 다행히 애들이 말썽없이 잘 커주는 보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니 아득하게만 보였던 웃는 날도 오더라구요."

하지만 한 시도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게 뱃일이다. 지난해 12월엔 위험천만한 상황도 겪었다. "사수도까지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허연 파도가 쉴새없이 배위를 덮치는데 이러다 죽는구나 싶더라구요. 20년동안 고깃배를 타면서 그 때처럼 바다가 무서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뱃일엔 도가 튼 부부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하다.

지난해 여름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기름값이 드럼당 11만원대로 떨어져 이제 살만하다는 부부. 앞으로도 5년쯤은 뱃일을 더 할 생각이라는 이들에게 소망을 물었다. 소박한 답이 되돌아왔다.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이죠. 또 잡은 고기를 소비자들에게 직접 팔 수 있는 직거래매장이 한 곳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소비자는 시중에서보다 저렴하게 생선을 맛볼 수 있고, 어민들도 고기값을 지금보다는 더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힘겨운 삶에 '희망'이란 이름으로 보답해준 바다를 향해 이씨 부부는 내일도 분주한 새벽을 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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