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법](7)고물수집 허재군 전옥순씨 부부

[이 사람이 사는 법](7)고물수집 허재군 전옥순씨 부부
"정직하면 부끄러운 직업은 없어"
  • 입력 : 2009. 02.21(토)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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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지으며 고물을 수집해 파는 허재군 전옥순씨 부부는 정직하게, 떳떳하게 세상을 살면 어떤 일이든 부끄러울 게 없다고 말한다. /사진=강희만기자

건강과 부지런함 재산으로 '스리잡'생활
떳떳하게 살라던 어르신 가르침 늘 새겨


아침 8시부터 이튿날까지 24시간 근무를 선다고 했다. 이틀에 한번 꼴로 말이다. 오전 9시30분. 그 시간쯤엔 집에서 지친 몸을 쉬고 있겠구나 싶었다. 예상이 틀렸다. 그들은 '일터'에 있었다. 남편이 퇴근해 아침밥을 챙겨먹자마자 집 부근의 농장으로 향했다.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허재군(62) 전옥순(59)씨 부부. 올해로 결혼 35주년을 맞는 부부의 재산은 '건강'과 '정직'이다. 남편 허씨는 '스리잡(Three Job)'을 한다.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골프장 경비로 일하면서 농사를 짓고 고물을 모아 판매한다. 부인 전씨 역시 집안 일에 농사, 고물 수집까지 하고 있으니 '스리잡'이다.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 부부도 다르지 않았다. 어린 딸이 몇차례 '아이스께끼'를 사먹고 3백원을 내지 못하자 가게 주인이 허씨에게 동네사람 들으란 듯 소리질렀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울컥해지는 기억이다. 맨 몸으로 생계를 꾸려가야 했던 때였다.

허씨는 20여년전 수박 농사를 짓다가 물건을 판돈 550만원을 떼인 뒤 상처가 컸다. 당시 농촌에서 집 하나 장만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 길로 농사를 접고 건설회사 자재운반직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회사 부도로 직장을 잃었다. 다시 농사를 짓다가 가스충전소에 일자리를 얻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농사 지을 여력이 없을 만큼 몸이 고됐다.

이런 중에 2001년 집을 지었다. 딸, 아들과 함께 아홉평반짜리 초가에 살던 부부였다. 반듯한 집이 생겼지만 형편은 그대로였다. 부부가 번갈아 병원 신세를 지는 일도 생겼다. 우연히 종이상자를 주워 팔아 3만원을 번 게 고물 수집을 시작한 계기였다. 세상의 시선을 신경쓸 바가 아니었다. 다만 아이들은 마음에 걸렸다. 어느날 남매를 앉혀놓고 물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게 부끄러우냐?" 딸이 답했다. "아니요. 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던 양복 입은 신사도 거리에 빈 종이상자가 뒹구는 걸 보고 주워 가던데요."

부부는 낮에 밭일을 하고 저녁밥을 먹고 난 뒤 농사용 차량을 끌고 폐지나 고철을 모으러 다녔다. 고철을 분리하면 값을 받는 게 수월해 산소용접으로 쇠를 자르는 기술도 배웠다. 비오는 날엔 고물을 모아놓은 농장에서 고철이나 폐지를 정리하며 하루를 보낸다.

이들 부부처럼 부지런히, 부끄럽지 않게 살아도 곤궁했던 살림이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재산을 일구거나 성공하려면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그래도 허씨는 정직하게 살라던 동네 어른의 가르침을 늘 마음에 새긴다고 했다. 지금보다 더 고달팠던 시절을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그들이다. 허씨가 말했다.

"아침밥을 먹으면 저녁 지을 쌀을 걱정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여유롭지 못할 뿐, 그때에 비하면 사는 게 나아졌죠. 빚 없이 지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순리대로 살다 가겠습니다. 어렵다고 움츠려 있을 게 아니라 어떻게든 움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디든 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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