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세계유산을 빛낸 사람들](6)-⑤한라산 사나이, 부종휴

[제주 세계유산을 빛낸 사람들](6)-⑤한라산 사나이, 부종휴
제1부 부종휴와 꼬마탐험대
한라산이 기억하고 있는 산사나이 '부종휴' 칭송
  • 입력 : 2009. 03.18(수) 00:00
  • 강시영 기자 sykang@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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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맨위는 한라산 정상부를 등정할 당시 부종휴(사진 가운데). 한라산 자락의 오름군(중)과 사라오름의 산정호수(하)의 경관을 부종휴가 촬영한 것이다. 부종휴는 생전 카메라에도 심취, 한라산의 주요 경관 등 수천 컷에 이르는 소중한 자료를 남겼다. /사진=한라일보DB

산악안전대·제주산악회·한라산우회 발족 주도
김종철·안흥찬·이기형 등과 일화 전해져
등반로 개척 … 4·3때 무장경관 대동 등반


육학년 우리 반에
선생의 아들이 있었다
만장굴을 처음 발견한 분이라 했다.
그 애는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했다

스무 살 무렵
제주시 남문로 소라다방
술 동아리 '골빈당' 시절
우리는 선생을 고문으로
모시기도 했다
그분의 큰 안경이 빛났고
한라산처럼 맑고 컸다
'생활'이 안 보였다
한라산 풀잎 스치는 소리만 났다
어딘지 쓸쓸하였다

그 후 나는
제주의 멋진 사내들이 다
한라산 계곡에서
시로미 익듯
영글었다는 걸 알았다

(추모시 '부종휴 선생', 나기철, 2004)

"세상만사를 어린애가 장난감 다루듯 부종휴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은 동굴과 한라산이었다."

원로 언론인이자 제주산악회 명예회원이기도 한 이기형 옹은 제주산악회 창립 40주년 특집호(2004)에서 부종휴를 '잊지못할 산사나이'이라며 이렇게 회고했다.

"산악회를 만들자고 산악회 불을 지르고 다닌 것은 부종휴였다.(중략) 부종휴를 '시작은 있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하면 좀 지나친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함께 산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의 진면목을 충분히 보았을 것이다.(중략) 부종휴는 개성이 강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며 어쩌면 아주 충동적이었다. 호기심 강하고 겁이 없어 보였다. 무슨 생각이 나면 곧 행동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지 그에게는 내일이 없어 보일 때가 많았다."

이 옹은 제주산악회 특집호 글에서 부종휴와의 첫 한라산 산행 경험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나와 부종휴와의 첫 산행은 1949년 첫 여름, 다라쿳(제주시 월평동)에서 동릉으로 해서 용진각, 그리고 정상으로 가는 코스였다.(중략) 동릉따라 용진각까지 갔다온 일이 있다고 부종휴에게 얘기했더니 당장 다음 토요일 오후에 그 코스로 산에 오르자고 졸라대는 것이었다. 딱 한번 그것도 외사촌형 따라 갔던 길이라 그 코스로 갈 자신이 없다고 하는 나를 몰아세우는 그의 말이 걸작이었다. '방향만 잡으면 못 갈 길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산을 타는데 겁도 없거니와 아주 산행에 단련돼 있어 나의 외사촌형에게 간략한 설명을 들은 그는 나에게 길을 안내하라고 나섰는데 그는 오히려 앞장 서 서두르는 것이 도저히 뒤따르지 못해 저만치 그의 등을 보면서 기진맥진할 지경이었다."

이 옹과 부종휴의 첫 동반산행은 16세기 명종대 충청도의 두 명사였던 토정 이지함과 고청 서기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토정은 '토정비결'의 저자로 당대의 기인이자 학자였다. 고청 역시 학문이 출중해 세인들의 존경을 받던 선비다. 이 둘은 절친한 친구였다. 2007년에 발간돼 화제를 모은 '선비답게 산다는 것'(안대회)에는 '편지로 운명을 위로하다' 편에 이 둘의 호방한 행동이 드러나는 탐라 여행에 얽힌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날 고청이 토정에게 극히 짧은 내용을 적은 서간인 '척독' 한통을 보낸다. '내일 조카를 데리고 탐라를 가려는데 선생께서 동행할 뜻은 없느냐'는 내용이다. "제주도 여행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런 먼 곳에 바로 다음날 함께 가자고 편지를 보낸 토정의 행동은 생뚱하기까지 하다"는 게 저자의 표현이다. 고청은 탐라 여행을 마치고 오히려 동행을 요청했던 토정을 먼저 집으로 보낸 뒤 중국 남부까지 여행해 주자의 초상을 가져왔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고 한다.

# 입산 통제기간에도 등반

민족사의 비극인 4·3이 일어나던 1948년 4월부터 한라산은 6년간 입산이 통제되었다가 1954년 9월 해제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훗날 부종휴와 함께 제주산악회를 태동시켰던 '오름나그네' 김종철, 안흥찬, 그리고 현임종(전 오현고 총동창회장)씨 등은 통제기간에도 한라산을 드나들었다.

"입산이 철저하게 봉쇄됐는데도 부 선생이 한라산에 오르려고 하자 관계당국의 허락을 받고 입산할 경우, 관음사 경비대 소속 경찰들이 결국 그의 신변보호를 위해 동행하기도 했다."(안흥찬) 현임종씨도 1953년 3박4일간 부종휴를 따라 처음 한라산에 같이 올랐다고 한다. 그 때도 부종휴가 한라산 식물채집을 위해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고 3명의 호위 무장경관을 대동한채 였다.

1956년에 이르러 신성여고, 제주여고 등의 학생들이 교사의 인솔로 한라산 등반에 나섰다. 인솔자는 신성여고 교사였던 부종휴를 비롯 김종철, 안흥찬, 이기형, 고영일, 김현우씨 등이었다. 그 이후 도내 모든 학교의 등반이 연례행사처럼 됐다.

# 산악활동 개척

산악활동이 조직적으로 전개된 것은 1961년부터였다. 이 해 5월 21일 우리나라 최초의 적십자사 제주지사 소속 산악안전대가 발족했으며 초대 회장에 김종철이 선임되고 부종휴, 안흥찬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제주도 산악운동은 제주적십자 산악안전대의 창립으로 비로소 태동하기 시작한다. 한라산 입산 해제와 더불어 조난사고가 빈번하자 한라산 조난 구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제주에서 산악회가 처음 조직된 것은 1964년 7월 21일이었다. 제주산악회는 초대 회장에 만농 홍정표선생을 추대하고 부회장에 부종휴, 간사에 안흥찬, 김현우씨를 선출함으로써 산악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한다. 한라산 등산로는 거의 대부분 이들에 의해 개척된다.

부종휴 주도로 한라산우회가 태동한 것은 그로부터 3년 후인 1967년. 초대회장에 부종휴가 선임되었으며 산하에 학술분과를 두어 식물조사와 동굴답사가 본격화되는 전기를 맞이했다.

산악안전대 창립을 주도한 부종휴와 '오름나그네' 김종철의 관계는 매우 각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평생을 산과 더불어 살았던 김종철(1927년생, 1995년 작고)은 부종휴(1926년생)와 한살 터울로 서로에게 깊은 신뢰감을 갖고 있었다.

시인 김순이씨는 2004년 '한라산과 부종휴' 학술심포지엄에서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부종휴 선생은 남편 김종철이 항상 경의를 표하던 인물이었다. 나지막하지만 단호했던 목소리로 들려주었던 김종철의 말 한마디가 '부종휴는 한라산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지'였다."

김종철이 극찬해 마지 않았던 부종휴는 1963년 제주도지 제12호에 '한라산과 등산안내'란 글에서 김종철에 대해 잠깐 얘기하고 있다. "김종철씨가 바로 100회 이상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필자는 겨우 69회 밖에 안되지만 그 연륜을 가질 때 까지는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한라산이란 그만치 매력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산이며 가도 가도 싫증을 느끼지 않는 산이라는 산증거라고도 말할 수가 있다." 두 사람은 이 후에도 각별한 관계속에 한라산을 벗 삼아 평생을 보냈다.

부종휴는 이 글에서 한라산 등반로 10개 코스를 소개하고 있다. 상당구간이 미개척 코스였다. 그는 그러면서 "무엇보다 등산로의 개척이 시급한 문제이며 직업적이고 훈련이 잘된 안내자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지적한다. 60년대와 70년대는 한라산 등반코스를 본격적으로 개척하는 시기였다. 한라산우회를 이끌던 부종휴는 등반로 개척에 앞장선다. 한라산정 동북쪽에 위치한 흙붉은오름에서 발견한 흰진달래(1968년 5월)는 한라산 동부 미개척 등반로를 개척하던 중 얻은 부산물이었다.

1968년 10월 25일자 제주신문은 부종휴가 새로운 등반코스로 ▷물장올-속밭-흙붉은오름-왕관릉-정상 ▷1100도로-어승생-어리목-장구목-정상 ▷법호촌-횡단도로-돈내코-평궤-정상 등을 권장하고 임시안내판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당시 한라산 등산로로는 ▷탐라계곡-용진각-왕관릉-정상 ▷횡단도로-성판악-정상 ▷서귀포-남성대-정상코스가 이용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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