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법](23)지하상가 옷수선점 주인 양영순씨

[이 사람이 사는 법](23)지하상가 옷수선점 주인 양영순씨
"내 삶의 최고 버팀목은 자신감"
  • 입력 : 2009. 06.27(토) 00:00
  • 문미숙 기자 msmoo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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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지체장애 1급 양영순씨가 작업대 앞에서 직접 수선한 옷을 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지체장애 1급으로 휠체어에 앉아 38년간 옷수선
"다리는 불편하지만 두 팔로 일할 수 있어 행복"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지체장애 1급의 양영순(55)씨. 그녀는 제주시 중앙지하상가내 7㎡나 될까 한 좁은 수선실에서 하루 꼬박 10시간을 옷과 씨름하며 지낸다. 그녀가 손재주를 발휘하면 바지가 치마로 변신하고, 때론 수선 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옷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른 손님의 취향대로 그녀의 손길과 재봉틀로 옷수선을 해온 것이 지하상가에서만 딱 20년째다.

생후 9개월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 쪽 다리가 마비됐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그녀는 가족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다.

17세가 되던 해 그녀는 자신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자립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리고 어떤 허드렛일이라도 기회를 달라며 이곳저곳을 찾아다녔지만 장애의 벽은 높았다. 단번에 거절당하기를 수 차례, 간신히 한 의상실에서 옷수선 보조로 일할 기회를 얻는다. 정직과 부지런함을 무기로 재봉틀 기술을 익혔고 장애를 가진 남편과 만나 결혼하면서 세탁소를 차린다.

"남매를 낳고 업어 키우면서 다리가 더 불편해져 장애2급에서 1급이 되면서 세탁소 일이 버거워졌어요. 그래서 1989년부터 옷수선만 전문으로 하는 가게를 지하상가에서 시작하면서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해냈죠."

장애인 등록 정보도 몰라 1980년에야 장애인 등록을 한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장애인들과 의기투합해 1984년 제주도지체장애인협회를 설립했다. 현재 그녀는 제주도지체장애인협회 제주시지회 화북동분회장을 맡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오면서 37세에 감행한 한라산 등반은 그녀에게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장애인 40여명과 함께 영실에서 윗세오름을 거쳐 백록담 정상까지 도착하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두 팔과 다리는 말할 것도 없이 온 몸이 상처로 부르텄지만 남매를 둔 엄마로서 해냈다는 성취감과 지나온 삶의 편린들이 떠올라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라는 그녀.

2002년 남편과 함께 떠났던 동남아여행에선 다 부서진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에게 자신의 휠체어를 주고 왔다. 너무 낡은 휠체어를 탄 그가 안됐다는 생각에 정작 자신이 두 다리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덕분에 그녀는 여행 내내 남편의 등에 업혀다녀야 했다.

제주시 화북동에서 옷수선 점포까지 그녀의 발이 돼 출퇴근을 도와주는 일은 남편의 몫이다. 집안 살림도 남편이 도맡다시피 한다. 부부는 지난해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중앙회장이 주는 모범가정패도 받았다.

"가난에다 장애로 배우지 못했지만 상처받지 않으려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고나 할까요. 장애를 지녔지만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존재감도 확인시켜 주고 싶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먼저 다가서려고 했어요."

수선할 옷을 들고 오는 고객들에게 신용을 기본으로 맞았고, 제법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덕택일까, 올해 4월 제29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그녀는 '올해의 장애인상'을 받았다. 1000만원의 상금 가운데 절반은 뚝 떼내 여러 장애인단체에 나눠 기부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지만 건강한 두 팔로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그녀. 행복은 느끼는 자만의 몫이란 걸 취재 내내 맑은 웃음을 보여준 그녀에게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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