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세계유산을 빛낸 사람들](12)-⑤기념사업 또 미뤄지나

[제주 세계유산을 빛낸 사람들](12)-⑤기념사업 또 미뤄지나
제2부 석주명과 제주
등록문화재 "안된다"…석주명 기념사업은 "추진"
  • 입력 : 2009. 07.22(수) 00:00
  • 강시영 기자 sykang@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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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나비박사'이자 제주학 연구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는 고 석주명 선생이 제주에 거주하는 동안 연구의 거점 공간이었던 제주대학교 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 전경. /사진=강경민기자 gmkang@hallailbo.co.kr

제주대, 아열대농업연구소로 본연의 기능·역할 강조
추진시기·주체 모호… 제주도가 기념사업 주도해야
"연구거점 공간을 기념관으로 전환" 진정성이 '관건'


서귀포시 토평동 소재 제주대학교 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는 세계적인 '나비박사'이자 제주학 연구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는 고(故) 석주명(石宙明·1908-1950) 선생이 제주에 거주하는 동안 연구의 거점 공간이었다.

문화재위원들과 학계에서 "석주명의 연구공간이었던 아열대농업연구소의 건축물이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갖고 있으며 보존·활용과 함께 등록문화재로 지정할 필요성이 높다"고 주장해 온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석주명 기념사업이 바로 제주대 아열대농업연구소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것은 당연하고 귀결이다. 제주도문화재위원들과 학계에서는 이 연구소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함으로써 석주명 기념사업의 단초를 마련하려 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이 연구소의 관리주체인 제주대학교에 이 연구소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는데 협조요청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등록문화재 지정 불가=제주대가 제주도의 이런 요청에 최근 모호한 답변을 회시했다. 등록문화재 요청에는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연구소를 앞으로 석주명기념관으로 전환시켜 나가겠다는 것이 골자다. 후자만 놓고 보면 매우 진일보한 자세의 변화지만 등록문화재 요청은 수용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은 제주도가 요청해온 내용을 사실상 거절한 것이다.

제주대는 도에 회시한 공문을 통해 "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는 열대·아열대 작물재배 연구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작물변화 연구의 중요한 거점으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등록문화재 추진시 연구소 본연의 기능인 연구 및 실험실습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매우 높기 때문에 제주의 미래를 연구할 연구소 기능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이 더 타당하다"고 밝혔다. 제주대는 이어 "종합적으로 연구소 본연의 연구와 교육 기능 수행은 물론 그 역할의 중요성으로 인해 연구 및 실험실습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등록문화재 추진을 불가하지만 대학에서는 석주명 선생의 업적을 기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석주명 기념관 전환=제주대가 공문에서 제시한 석주명 기념사업에 대한 내용은 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 종합발전계획(2008-2018) 가운데 석주명 선생 기념사업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 건물은 사무실 192㎡, 화장실 20㎡, 연결통로 10㎡ 등 모두 222㎡규모로 192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7년에 보수가 이뤄진 후 현재 사무실과 창고 및 식물시험육종실로 활용되고 있다.

종합발전계획에 따르면 "이 연구소는 열대·아열대 작물의 재배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고 있으며, 석주명 선생이 연구했던 장소로서 제주학적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 최근 제주도문화재위원회, 석주명 선생 기념사업회 등에 의해 연구소의 등록문화재 추진과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소로서의 위상정립이 요구된다는 사실도 함께 적시하고 있다. 종합발전계획은 연구소의 본연의 기능을 살리면서 석주명 선생의 업적과 문화적 가치를 고려해 지속 유지·관리하고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려는 구상이다. 그러나 추진시기 등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았다.

종합발전계획은 연구소 건물의 활용과 관련한 추진방안에 대해서도 제시하고 있다. 우선 현 연구소 건물에 대해 석주명 선생 기념관으로 전환하고 연구동과 상품전시판매장을 마련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연구동을 신축하기 전 까지는 연구소로 지속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석주명 기념관으로 전환할 경우 강의실과 실험실, 사무실, 유리온실에 대한 활용방안까지 적시했다. 강의실에서는 석주명 선생의 일대기를 동영상으로 상영하는 것을 비롯해 나비표본 등의 전시·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실험실은 석주명 선생 연구모습과 장소로 복원하는 내용이다. 또 사무실은 석주명 선생의 유품 및 사진 전시실로 활용하고 유리온실은 나비모형 설치와 나비 생활사 전시, 나비표본을 전시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기념사업 체계 구축=종합발전계획은 석주명기념사업회와 제주도, 서귀포시, 국립과천과학관, 유가족, 관광협회와 공동으로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구상이 담겨 있다. 우선 석주명기념사업회와 협약을 체결해 석주명을 기념하고 이를 선양할 수 있는 공동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제주도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도에서 추진하고 있는 석주명기념관 건립에 연구소가 참여해 연구소 인근에 건립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연구소와 연계한 관광상품을 개발하도록 추진하려는 구상이다.

서귀포시에 대해서는 현재 연구소 밖에 위치한 석주명 흉상을 연구소 건물 옆으로 이전 추진하도록 하고 국립과천과학관과는 석주명 선생의 생애와 연구업적에 관한 공동행사를 기획·추진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또 석주명 선생의 형제, 자손들의 협조를 얻어 연구소 건물에 전시할 수 있도록 협조 요청하고 정기적으로 유가족을 초빙해 석주명 선생을 추억할 수 있는 행사를 개최하겠다고 했다.

이와함께 관광협회나 관련 업체와의 협약을 통해 연구소를 교육과 연구, 체험이 가능한 탐방 내지 교육장으로서 수학여행단과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도 포함돼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제주대가 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의 등록문화재 지정에 불가 입장을 밝힌 것은 석주명선생 탄신 100주기와 명예의 전당 헌액을 계기로 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기념사업을 구체화시켜야 한다는 여론에 배치되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건축·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이미 평가받은 건물에 대해 문화재 지정을 수용하지 않은 것은 지성의 상징인 대학답지 못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따라 민간을 중심으로 줄기차게 제기되고 진행돼 온 석주명 기념사업은 상당기간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석주명 기념사업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해 온 제주대가 석주명기념사업의 필요성과 구상을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대학이 일시적으로 여론을 무마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현재 제주대가 처한 학내문제가 해소되는 대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후속대책을 제주도와 기념사업회 등 관련기관·단체와 함께 모색하려는 진정성을 보일 때라는 지적이다.

제주대 관계자는 "학내 사정상 구체적으로 확정짓지 못하는 사항들도 있다"며 "제주사회의 여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취지에 어긋나지 않도록 대학당국도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현안은 제주대에만 책임을 전가할 일도 아니다. 제주도 당국이 대학측의 결정만 기다릴게 아니라 후속대책을 마련하는데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30년 가까이 제주사회에 줄기차게 제기돼 온 석주명 기념관 등 기념사업이 담론으로 그칠지, 아니면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이제 새로운 출발지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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