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법](33)백혈병 치료 선구자 김춘추 박사

[이 사람이 사는 법](33)백혈병 치료 선구자 김춘추 박사
"죽음의 문턱에 선 환자들 돕고 싶어"
  • 입력 : 2009. 09.12(토) 00:00
  • 백금탁 기자 gtbaik@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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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가톨릭의대를 퇴임하고 제주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김춘추 박사는 꺼져가는 환자들에게 삶의 빛을 지피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사진=이승철기자

가톨릭의대 퇴임 후 제주서 제2의 인생
'백혈병=완치 가능한 병’으로 인식 바꿔
한때 백혈병 환자의 90% 진료 독보적


"현재 제주의 백혈병에 대한 의료환경은 지난 79년 당시 '황무지'였던 한국 실정과 비슷하다. 처음 연구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의료봉사하며 제2의 인생을 살겠다. 죽음의 문턱 앞에 서 있는 환자들이 삶의 길로 한걸음씩 걸어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지난 10일 한라병원에서 만난 '백혈병의 대부'인 김춘추(65) 박사는 첫 인사가 끝나자 마자 시집 한권을 꺼내 '석양'이라는 시를 먼저 읽어보라 권했다. 그는 '국내 조혈모세포이식의 선구자' '조혈모세포이식의 세계적 권위자', '백혈병 치료 명의'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백혈병의 독재자'다. 그리고 또다른 수식어는 '시인 김춘추'다.

현재 한라병원 혈액내과장인 김 박사는 1983년 국내 최초로 혈연간 조혈모세포이식을 성공시켰다. '백혈병은 곧 죽음'이라는 등식을 '완치 가능한 병'으로 개념을 바꾼 장본인이다. 한 때 우리나라 백혈병 환자의 90%를 진료할 만큼 독보적인 존재다.

지난 34년간 3500회의 조혈모세포이식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그의 뒤에는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집까지 팔며 도사견 300마리를 구입했고 임상실험에 몰두하며 얻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은 결과로 그는 꺼져가는 환자들의 생명에 삶의 빛을 지피기 시작했다. 선구자적 역할을 묵묵히 일군 그에게 옥조근조훈장(과학기술유공, 2000), 쉐링임상의학상(2006), 자랑스런 가톨릭의대인상(2005)이 주어졌다.

지난달 31일 가톨릭의대를 정년퇴임 후 찾은 것은 제주다. 그 이유도 간명했다.

"난 경남 남해 섬 출신이다. 섬사람들이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배타적이고 또 하나는 진취적이다. 그래서 제주사람들과 기질이 비슷하다. 제주는 남은 여생을 일평생 바친 학문과 예술, 취미로는 낚시를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최적지다."

그는 '외곬'이다. 백혈병과 시에서는 더욱 그렇다. 1998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최근까지 7편의 시집을 냈다.

그는 "시가 전공이고 백혈병은 부전공"이라고 했다. 그의 시사랑은 정년퇴직을 기념하면서 논문을 대신해 시집 '등대, 나 홀로 짐승이어라'(솔의시선, 2009)로 매듭졌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에 빠져든 그는 문학도를 포기하면서 힘겨운 백혈병 임상실험과 진료를 하는 과정에서도 시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김남조 시인은 "김춘추 시인의 작품은 예리하고 청명하면서 슬프도록 간절한 인간애가 전 작품을 관통하며 흐르고 있다"고 평했다.

"환자의 죽음과 임상실험 당시 도사견의 죽음을 볼 때마다 인간으로서 감성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시나 과학이나 모두 상상력에서 시작한다. 당시 불치병이던 백혈병에 도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제주도민에게 부탁했다.

"대한민국의 백혈병 할아버지가 왔는데 제주에서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 기술상이나 노하우 등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백혈병은 0%의 가능성에서 시작한다. 치료중에도 합병증 50여개가 위협한다. 그만큼 의사가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의사와 환자, 환자가족, 병원이 '4위일체', 즉 믿음과 상생구도가 형성돼야 가능성도 더욱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제주 백혈병 치료에 있어 환한 불빛을 밝히는 '등대'와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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