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초등학교 제2회 졸업 사진. 폐교 이후 결성된 총동문회에서 수소문해 찾아낸 옛 사진이다.
광복후 잇단 학교 설립시기인 1946년 마을주민 힘으로 세워
학생수 55명 안돼 1998년 폐교… 보흥분교장은 84년 문닫아
"배움의 횃불을 오랫동안 밝혔던 자리임을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웁니다." '배움의 옛 터'라고 적힌 큼지막한 빗돌은 역설적으로 신도초등학교의 '부재'를 말해줬다. 빗돌 옆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바람의 아들' 양용은 골퍼(신도초 33회)가 2009년 10월 고향 방문을 기념해 심은 나무다. 양 선수는 당시 "모교가 폐교돼 아쉽다"는 말을 했다.
▶'바람의 아들' 아쉬운 기념 식수
1987년 신도리와 신도국민학교가 펴낸 '신도향사'를 보자. 신도리 주민들은 마을에서 3~4㎞ 떨어진 무릉소학교로 가서 공부해야 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광복이 되자 그동안 묻어뒀던 교육열을 밖으로 꺼내놓는다. 신도공립국민학교설립추진위원회를 만들고 고생석씨(작고)를 위원장으로 추대해 본격적인 활동을 벌였다. 자체적으로 부지 일부를 확보해 놓고 진정서와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다. 그 해가 1946년이다.
1946년은 제주도 곳곳에서 학교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일었던 해다. 미 군정 3년동안 43개 초등교가 설립되었는데 70%가 넘는 33개교가 1946년 한햇동안 세워졌다. 지금의 제주시에 12교, 서귀포시에 21교가 들어섰다. 이 시기는 교육 당국의 지원보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학교가 탄생했고 마을 공회당, 일본군 시설물, 창고 등을 임시 교사로 썼다.
▲보리밭으로 변한 옛 신도초보흥분교장. /사진=진선희기자
신도초도 다르지 않다. 마을 사람들의 노력으로 개교한 이후 오늘날의 마을회관 같은 향사를 교실로 사용했다. 1951년 정규 2개 교실 신축, 1957년 7개 교실 신축, 1974년 부지 확장, 1980년 5개 교실 신축, 1984년 교문 이설 등 역사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이 과정에서 1955년 보흥분교장이 생겨난다. 통학거리가 멀어 불편을 겪고 있는 신도2리 1~2학년 학생들을 위해 설치됐다. 30년 가깝게 명맥을 이어오던 보흥분교장은 1984년 3월 폐장된다. 도로 포장 등 신도초로 드나드는 게 한결 나아지면서 문을 닫았다. 도내 폐교 역사의 첫머리에 놓인 신도초보흥분교장은 '배움의 옛터'란 빗돌만 남긴 채 밭으로 변했다. 이즈음 그곳엔 초록 보리물결이 일렁인다.
▶농촌마을개발사업으로 부활 꿈꿔
1986년 새마을교육 최우수학교 표창을 받으며 주목을 끌었던 신도초였지만 세월의 변화를 비켜설 수 없었다. 1987년 174명이던 학생수는 10년 뒤인 1997년 54명으로 싹둑 줄어든다. 1997년 2월 '98년도에 재학 아동이 55명 미만이 되면 어린이 교육의 정상을 기하기 위해 무릉초등학교로 통합하기로 하며 신도 1~3리 이장과 학부모회장, 학부모 다수의 서명을 받아 각서를 제출'했는데 결국 신도초는 이듬해 47회 졸업생 배출을 끝으로 폐교의 역사를 맞았다. 신도 1~3리 아이들은 지금 통학버스를 타고 무릉초·중학교로 향한다.
신도초 졸업생들은 2010년 1월 총동문회를 결성했다. 폐교된 지 10여년이 지나 이례적으로 총동문회를 만들었는데 옛 학교를 중심으로 지역발전을 꾀하자는 결심이 컸다. 마침 신도·무릉리 일대 무릉도원올레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올해부터 시작된다. 기본계획에는 홍보센터 건립, 학교가 내려다보이는 녹남봉 올레코스 정비, 신도초에 터잡은 산경도예 도자기체험 활성화, 신도리 바닷가 테마 체험학습장 운영, 농특산물체험관 운영 등이 포함됐다. 신도초를 품었던 마을 사람들은 10여년전 폐교의 쓰린 기억을 딛고 '무릉도원'을 가꾸려 하고 있다.
▲옛 신도초등학교 전경
김세봉 총동문회장 "학교 사라졌지만 마을위해 힘쓸 것"
"마치 어머니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폐교되고 몇 년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상실감이 컸다."
초대 신도초등학교총동문회장을 맡은 김세봉 전 제주산업정보대 교수(70·신도초 3회·사진)는 폐교에 얽힌 기억을 그렇게 풀어냈다.
신도2리 출신인 그는 여느 동문처럼 모교가 사라진 것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동문들이 마을과 손을 잡고 옛 신도초 일대를 새롭게 탈바꿈시키려는 계획은 그같은 마음과 닿아있다.
현재 학교 운동장에 잔디를 입히는 등 공원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양용은 선수와 신도초의 인연을 붙잡은 미니골프장 건립 등을 구상하고 있다. 폐교의 일부를 활용한 마을 수익사업도 검토중이다.
그는 총동문회가 구성된 직후 교육청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폐교 활성화를 위한 여러 방안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관심과 지원을 구하기 위해서다.
"일본은 마을이 생기면 학교부터 세운다고 한다. 단 몇 명을 위해서라도 학교를 존치하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교육이 국가의 미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도내 학교 통폐합도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 신도초가 어느날 다시 문을 열 수도 있지 않은가."
풍금있던 자리에 도자 향기
도예가 부부 10년째 산경도예 운영
초등생들이 떠난 자리, 중학생들이 들어 앉았다. 지난달 30일 서귀포시 대정읍 옛 신도초에 둥지를 튼 산경도예. 중문중학교 미술반 학생들이 이곳을 찾았다.
아이들은 동글동글 흙을 쌓아올리며 화분을 빚고 있었다. 낡은 풍금은 소리를 멈추고 칠판 따위는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란 얼굴을 하고 그렇게 교실로 돌아왔다.
▲옛 신도초에 들어선 산경도예를 찾은 방문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충남 공주 계룡산도예촌에 머물렀던 도예가 김경우씨 부부가 폐교에 짐을 풀어놓은 해는 2001년이다. 당초 애월에 정착하려던 계획을 바꿔 널찍한 폐교로 발길을 돌렸다. 교육청으로부터 폐교를 빌려 나무와 풀로 온통 뒤덮였던 학교를 도예 체험과 전시 공간으로 꾸며나갔다. 병설유치원으로 쓰던 곳은 살림집으로 바꿨다.
현재 산경도예는 도자기·테라코타·토우 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장을 비롯해 전시판매장, 작업실 등을 갖췄다. 한해 이용객은 1000명쯤 된다. 흙과 불이 만난 도자기들이 폐교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는 셈이다.
▲중문중 학생들이 산경도예에서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김씨가 폐교에 정착한 지 어느덧 10년이 됐다. 손을 봐도 끝이 없는 낡은 학교 시설을 고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다. 한때는 버스를 운행하고 5~6명까지 일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제주시 도심에서 떨어진 곳인데다 이곳저곳 도예 체험 공간이 늘면서 어려움이 많다. 근래엔 1년치 임대료를 내기도 빠듯한 형편인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