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배움터를 가다/폐교의 어제와 오늘](11)신풍분교(1970~1996)

[옛 배움터를 가다/폐교의 어제와 오늘](11)신풍분교(1970~1996)
국민학교 승격 꿈꿨지만 기념비만 남긴 채 잔치마을로
  • 입력 : 2011. 09.05(월) 23: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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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청소년수련원으로 탈바꿈한 옛 신풍분교장. /사진=진선희기자

마을 주민·신풍리 출신 재일동포 등 힘 합쳐 학교 세워
개교 초반엔 1~4학년 100명 넘기며 풍천초와 분리 추진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분교장 입구에는 교사증축기념 빗돌이 서있다. '교육발전 후대육성'이란 글귀가 달린 비석에는 교실을 짓는데 예산을 내놓은 신풍리 출신 재일동포들의 명단이 빼곡하다. 오사카에 살던 재일동포를 주축으로 한 재일향리국민학교건설후원회는 1970년 당시 1인당 20만원에서 5000원까지 모두 28명이 144만원을 기부했다.

▶일제강점기 신풍학당의 열정

신풍분교는 마을 사람들의 노력으로 탄생한 학교다. 재일동포는 물론 지역 주민들이 십시일반해 학교를 세웠다. 신풍분교에서 작성한 학교연혁을 보더라도 1970년 3월 개교 무렵 교실 2곳과 화장실, 숙직실 등 부속건물을 지을 때 주민들이 비용을 댔다. 물탱크 시설도 마을 부담으로 설치했다. 이듬해에는 재일동포들이 교실 1곳과 실습지 400평을 희사했다. 같은 해 7월 900평에 이르는 학교 부지를 확보하는 일은 마을 주민들이 맡았다.

풍천초는 신풍리와 신천리의 중간 지점에 들어섰지만 통학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왕복 통학로가 5㎞에 이르면서 저학년들의 불편이 컸다. 설립 인가를 받고 주민들이 너나없이 힘을 보탰다.

오기욱(76) 신풍리 노인회장은 "학교 부지는 마련했지만 땅이 고르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우마로 돌을 날라 메웠던 기억이 있다"면서 "주민들 너나없이 고생이 참 많았다"고 말했다.

신풍리는 분교장이 생겨나기전 일찍이 신풍학당이 있었다. 재일동포 오천년이 일제강점기 때 한푼 두푼 모은 4000원으로 고향에 설립한 개량서당이다. '나라를 찾으려면 후진을 교육시켜 동량을 기르는 길 밖에 없다'며 설치했다. 마을회관 입구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1943년 건립됐다.

▲신풍분교장 입구에 세워진 재일동포 희사 기념비.

▶신풍·신천리 학생수 30명 불과

빗돌에 새겨진 것처럼 '거액을 희사해 배움을 도와준' 선각자의 열정을 이은 신풍분교장은 개교 초반 학생수가 매년 늘었다. 1학년 25명으로 문을 연 이래 1971년에는 1~2학년 2학급 63명, 1972년 1~3학년 3학급 82명, 1973년 1~4학년 4학급 113명에 달했다. 이 기간에는 남제주군교육청에 신풍리 주민들의 진정서가 잇따랐다.

1970년에는 3학년 어린이들까지 분교장에서 수용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듬해 6월에는 분교장을 '국민학교'로 독립해달라는 의견을 냈다. 학생수가 100명에 가까운 시절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본교와 분교 사이에 하천이 있어 큰 비가 내릴 때는 범람 위험으로 교통이 차단되는 사례가 있는 만큼 신풍분교를 풍천초와 완전히 분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어멍아방 잔치마을 체험장을 찾은 풍천초 학생들이 줄넘기를 하고 있다. 신풍리는 성산청소년수련원이 들어선 옛 신풍분교장과 연계해 잔치마을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풍천초에서 제공한 사진이다.

하지만 본교 승격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생수는 차츰 내리막길을 걸었다. 1988년 3개 학급, 1992년 2개 학급으로 줄어들면서 복식수업이 불가피해졌다. 1995년에는 3~4학년을 풍천초에서 통합수용했다. 1994년 학부모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신풍분교 통폐합 안건이 통과됐고 우여곡절끝에 2년 뒤인 1996년 3월 폐교가 이루어졌다.

신풍분교장을 통폐합한 풍천초 학생은 지금 신풍리 14명, 신천리 16명에 이른다. 전체 학생수가 30명에 불과한 본교다. 1999년 4학급으로 편성된 뒤 지역 주민들의 노력끝에 2005년 6학급으로 다시 늘어났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3월 다시 4학급으로 편성된 풍천초는 현재 통폐합 대상 후보 학교중 한 곳이다.

신풍리 마을 이장 김영선씨 "풍천초 학생수 줄어 통폐합 거론돼 착잡"

"학부모들은 통폐합에 찬성했지만 마을 유지들은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피땀 흘려서 만들어놓은 학교인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없애냐는 불만이 컸다."

서귀포시 이장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선(58·사진)신풍리장은 신풍분교 폐교 당시의 이야기를 묻자 그렇게 운을 뗐다. 마을 주민들이 손수 만든 첫 교육기관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허탈감이 그만큼 컸다는 말이다.

김 이장은 폐교 무렵 어수선했던 풍경을 들려줬다. 통폐합 추진이 자꾸 늦춰지자 신풍리의 일부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신산초등학교로 전학시켰던 일화다. 본교인 풍천초 통폐합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겨냥해 학부모들이 '시위'를 벌인 셈이다. "복식수업 등 아이들의 교육환경이 열악해지고 있는데 왜 통폐합을 반대하느냐"는 거였다.

결국 신풍분교장은 문을 닫았고 그곳은 지금 '어멍아방잔치마을'체험장과 이웃한 성산청소년수련원으로 변해있다. 성산읍에 있는 청소년수련원으로 차츰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김 이장은 아쉬움이 남아있는 듯 했다.

"청소년수련원에 시설 투자를 하려고 해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어차피 마을 재산이 아니지 않은가. 마을 공동체에서 마련한 학교인데도 신풍리 소유가 아니어서 서운할 뿐이다."

김 이장은 이즈음 걱정거리가 생겼다. 신풍분교장을 본교로 통합했더니 몇년전부터 풍천초 통폐합이 거론되고 있어서다. 김 이장은 "신풍분교장처럼 또다시 마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문을 닫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잔칫집 두부 먹어볼까

폐교 시설과 연계 농촌체험 다채


신풍분교장은 '옛 배움터'란 큼지막한 빗돌을 남긴 채 성산청소년수련원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1996년 3월 신풍분교장 폐교 이후 비어있던 학교는 2001년 3월 성산읍에 있는 유일한 청소년수련원으로 탈바꿈한다.

외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내부를 일부 고쳐 숙박시설, 식당 등을 갖췄다. 신풍리에 시설 운영을 맡긴 서귀포시에 따르면 최근 몇년간 성산청소년수련원 이용객은 꾸준하다. 숙박시설 이용자를 기준으로 2009년 5300명, 2010년 4638명이 머물렀고 올해 상반기에는 3190명이 옛 신풍분교장을 거쳐갔다.

▲성산청소년수련원과 이웃한 어멍아방잔치마을 체험장.

신풍리는 성산청소년수련원 입구에 테마마을을 체험장을 조성했다. 이름해서 '어멍아방 잔치마을'이다. 체험장을 개장할 때 지금은 고인이 된 신풍리의 노부부가 결혼 60주년을 기념해 전통혼례를 치른 게 계기가 됐다. 마을 원로를 중심으로 자연스레 테마마을 명칭을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잔칫날처럼 흥겨운 분위기속에 가족간 정을 키울 수 있는 마을을 만들자는 것이다.

2002년 2월 농촌진흥청 선정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된 '어멍아방 잔치마을'은 전통 초가, 체험시설, 테마마을 버스 등을 하나둘 장만해나갔다. 마을에서는 성산청소년수련원과 연계해 이곳에서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혼례 체험, 집줄놓기, 바닷물 손두부 만들기, 조랑말 타기, 물허벅 지기, 빙떡 만들기, 감물염색, 고구마 캐기, 감귤 따기 등 다양하다. 잔치마을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일주일전에 예약해야 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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