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배움터를 가다/폐교의 어제와 오늘](14)평창 감자꽃스튜디오

[옛 배움터를 가다/폐교의 어제와 오늘](14)평창 감자꽃스튜디오
잠자던 폐교에 핀 감자꽃 강원 산골마을을 문화로 재생
  • 입력 : 2011. 10.24(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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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이곡리 감자꽃스튜디오 야경. 1999년 문닫은 노산분교장을 건축가 이종호의 설계로 리모델링한 감자꽃스튜디오는 지역주민을 적극적인 문화주체로 성장시키는 문화예술교육 등을 통해 지역의 대표적 문화공간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사진=감자꽃스튜디오 제공

평창군 옛 노산분교장 리모델링 감자꽃스튜디오 개관
예술교육에 집중투자하고 폐교 네트워크로 공생 모색


1999년 9월 강원도평창교육청교육장이 세운 '문닫은 학교 안내문'이 그곳에 있었다. 평창군 평창읍 이곡리 333번지 감자꽃스튜디오. 평창초등학교 노산분교장 자리에 들어선 '산골마을'의 문화공간이다.

▶평창군·강원도 적극 지원으로 탈바꿈

노산분교장은 1938년 인가받은 평창국민학교 노산간이학교에서 출발했다. 1944년 2학급의 노산공립국민학교로 승격했고 1955년 지금의 자리로 학교를 옮겼다. 분교장으로 개편된 시기는 1987년. 10여년간 분교장으로 '버텨오던'학교는 1999년 9월 끝내 문을 닫았다. 49회동안 292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학교는 그렇게 추억이 되어버렸다.

학교가 문을 닫은 뒤 몇몇 이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된장 공장이 들어섰는가하면 정당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했다. 감자꽃스튜디오 이선철 대표가 2002년 이곳을 임대할 무렵엔 유리창 곳곳이 깨져있었다. 어느 시절엔 아이들의 함성으로 채워졌을 학교지만 그들의 온기가 사라지자 폐허로 변해갔다.

▲지난 5월 열린 감자꽃마을축제는 지역에 도움을 주는 새로운 농촌마을축제를 만들겠다며 시작된 행사다.

문닫은 학교의 활용 방안을 말할 때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곳이 감자꽃스튜디오다. 여느 폐교와 달리 남다른 외양을 한 이곳은 2004년 평창군에서 건물을 매입하고 강원도에서 지원해 건축가 이종호씨의 설계로 새롭게 태어났다. 오래된 폐교 건물은 살린 채 반투명플라스틱 캡슐을 씌운 것 같은 아트리움 기법을 썼다. 시골 폐교의 선입관을 깬 건물은 한층 밝고 모던해졌다.

2층 건물의 감자꽃스튜디오는 도서관, 박물관, 식당, 강당, 숙소, 학교숲, 운동장 등이 펼쳐진다. 당초 지역 특산물인 옥수수를 주제로 꾸몄던 건물안 작은박물관은 지난 5월 노산분교박물관으로 바뀌었다. 폐교에 가면 정작 학교 역사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사진자료와 재산대장 뿐이지만 동문이나 마을주민들에게 학교와 관련한 추억의 물품을 기증받아 박물관 전시를 확대할 계획이다.

▶"동네 사람 모두가 주인공인 축제를"

지난 5월 28~29일 감자꽃스튜디오는 이곡리, 노론리, 조동리, 고길리, 지동리 등 평창읍 동부5리 사람들과 함께하는 '감자꽃 마을 축제'를 열었다. '분교로 가는 봄소풍'이란 이름이 붙은 축제는 김창완밴드처럼 유명인이 참여한 공연도 있었지만 중리농악, 평창아라리처럼 마을의 자원을 살린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차려졌다. '동네 사람 모두가 축제의 주인공'이라는 기획 의도처럼 옛 학교는 '타임머신'을 타고 마을의 놀이터가 됐다.

1980년대 이후 평창군에서 사라진 학교는 지금까지 39개교에 이른다. 노산분교장이 문을 닫은 1999년 한해에만 8개 초등학교가 폐지학교에 이름을 올렸다. 강원도교육청은 폐교수가 늘어나자 2009년부터 소규모학교 통폐합 대상 학생수를 15명 이하로 낮췄다.

▲감자꽃스튜디오가 운영하는 어린이 대상 분교캠프.

감자꽃스튜디오는 이중 평창군에서 매입하거나 임대해 문화공간으로 재활용되고 있는 폐교시설과 손을 잡고 '평창군 폐교 네트워크'를 가동하고 있다. 지난해 첫 발을 디뎠고 내년까지 폐교 네트워크 대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네트워크 사업 운영에 필요한 예산은 국비와 군비 50%씩 투입된다. 올해는 연극 연습실 등을 갖춘 덕거예술인촌, 국악의 향기가 있는 수하산문화학교가 참여해 장애 청소년, 주부, 지역주민 등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평창읍도 다른 농산어촌처럼 주민들이 하나둘 고향을 등지고 있다. 이선철 대표가 옛 노산분교장에 막 둥지를 튼 2002년만해도 이곡리에 30가구 80명이 살았지만 지금은 68명으로 줄었다. 감자꽃스튜디오가 유명세를 타며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빈 집도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폐교 네트워크의 '맏형'격인 거점기관으로 참여하는 감자꽃스튜디오의 이 대표는 "지역에 흩어진 폐교 시설이 한데 모였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크다"고 했다. 그는 평창을 방문하는 이들을 위해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폐교시설 투어를 기획하는 등 폐교 자원을 지역발전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고 싶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폐교는 지역의 정서적 구심, 수익보다 공익적 역할 우선"

"문화로 유인해 관광으로 돈을 벌자." 감자꽃스튜디오 이선철 대표(46·사진)는 오랜 이야기끝에 그런 말을 꺼냈다.

이 대표는 일찍이 '재활용 전문가'였다. 김덕수사물놀이패 기획실장이던 1993년 충남 부여의 폐교를 이용해 사물놀이학교를 운영했고, 1997년에는 경기 양평의 어느 폐교에서 전통악기공방을 열었다. 영국에 유학해 예술경영을 전공할 때도 버려진 시설을 재활용한 사례를 지켜봤다. 감자꽃스튜디오가 '성공'한 이후에도 주문진의 노인회관, 재래시장의 옥상, 울릉도의 농가 등 지역의 유휴시설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는 그다.

서울 토박이인 그가 2002년 평창읍 노산분교에 짐을 내려놓을 때만 해도 잘나가던 공연기획자로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편안히 쉬게 하자는 마음이 컸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폐교 시설을 급한대로 고쳐 지내던 어느날 강원도지사가 그곳을 찾았다. 유명한 기획자가 산골에 터잡았다는 소식을 들은 도지사는 그에게 먼저 지역주민을 위해 폐교 시설을 써달라고 제안했다. 평창군과 강원도가 과감하게 시설지원을 벌였고 매입 비용을 포함 4억원을 들여 지금의 건물로 '부활'했다.

이 대표는 학교, 지자체, 교회 등 다각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학생, 노인, 장애인,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2005년 이후 5년간 문화예술교육 등을 통해 집중투자가 이루어지는 동안 지역 주민들은 적극적인 향유자로 변해갔다. 지역의 문화기획자로 성장한 일도 있다. 현재 감자꽃스튜디오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스물셋의 청년은 감자꽃스튜디오가 지원했던 평창고교의 '대일밴드' 출신이다.

"폐교는 지역의 정서적 구심점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이 대표는 "시설 운영자의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감자꽃스튜디오는 공모사업을 통해 교육 프로그램만 가동하고 식사, 숙박은 지역주민이 운영하는 시설을 이용하도록 이끈다. "예술가가 정착하면 그 마을의 격이 높아지는 것"이라는 이 대표는 "그만큼 예술가도 지역사회와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봄 열었던 '감자꽃 마을축제'는 폐교 시설에 터잡은 감자꽃스튜디오가 지역에 도움이 되고 주민과 방문객이 즐거운 농촌마을축제의 전형을 만들어보기 위해 시작된 행사다. 잠들었던 폐교가 깨어나 마을을 살리는 일, 바로 감자꽃스튜디오가 써내려가고 있는 '전설'같은 이야기다.

/평창=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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