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배움터를 가다/폐교의 어제와 오늘](15)정선아리랑학교

[옛 배움터를 가다/폐교의 어제와 오늘](15)정선아리랑학교
고단했던 폐광촌 기억 너머 마을의 자긍심 담는다
  • 입력 : 2011. 10.31(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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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군 옛 매화분교에 들어선 정선아리랑학교와 추억의 박물관. 지역과 상생하며 폐광촌의 역사를 전하고 있는 공간이다. /사진=정선아리랑학교 제공

1997년 매화분교장 무상임대 활용하다 정선군에서 매입
추억의 박물관 조성후 지역 상권 활용 무료입장 등 실시

1979년 4월 어느날의 신문 기사가 방문객을 먼저 맞았다. '광산서 화약 폭발 28명 사망'이란 큼지막한 제목이 달린 기사였다. 함백탄광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지하갱도에서 석탄가루를 마시며 광부들이 간당간당 목숨을 이어갔던 곳. 그런 기억을 안은 마을에 들어섰던 옛 학교는 지금 아리랑 가락이 흐르는 박물관으로 변했다.

▶광산의 흔적 배인 소장품 전시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한참 달려 다다른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방제1리 옛 매화분교장. 1963년 1월 함백초 매화분교장으로 설립 인가를 받고 그해 3월 개교했다. 1~3학년 1학급으로 출발해 70년대에는 6학년 졸업생 10여명씩 배출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하나둘 폐광촌을 떠나면서 학교도 서서히 스러졌다. 폐교 무렵 매화분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단 2명이었다.

정선교육지원청에 따르면 2011년 9월 현재 이 지역에서 문을 닫은 학교는 모두 52곳에 이른다. 1987년 가사분교장을 시작으로 지난해 3월까지 폐교가 꾸준히 이어졌다. 1990년대에만 34곳이 문을 닫았다.

매화분교가 폐교된 해는 1996년 3월. 아이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학교는 금세 변해갔다. 웃자란 풀로 뒤덮인 폐교는 닭키우고 감자를 썩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폐교 이듬해 매화분교장을 무상 임대한 진용선 정선아리랑학교 대표는 관사, 교실바닥, 상수도 시설 등을 수리하고 운동장을 정비했다. 주변에 단풍나무 등도 심었다.

정선아리랑학교는 오랜 기간 지자체나 교육청의 지원없이 홀로서기를 하며 정선아리랑을 보존 전승하는 프로그램을 개설해왔다. 그러다 문화관광부의 지원으로 '추억의 박물관'을 세웠다. 아리랑 관련 자료만이 아니라 나고 자란 광산의 흔적에 관심을 가지며 교과서, 공책, 딱지, 고서 등을 모아온 진용선 대표는 소장품을 중심으로 박물관을 꾸리고 있다. 최근에는 정선아리랑학교처럼 폐교 시설인 정선군 옛 숙암분교에 조성된 별천지박물관에 일부 자료를 대여해주기도 했다.

▲정선아리랑학교에서 아리랑을 배우고 있는 외국인들



▶성공적 폐교 활용 지자체에 영향

옛 매화분교에 정선아리랑학교가 문을 열 무렵엔 폐교 시설 활용에 대한 인식이 낮은 때였다. 진 대표가 정선아리랑학교를 장기적으로 운영할 생각으로 폐교를 임대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1997년 지금의 매화분교를 빌렸고 정선아리랑학교의 성공 사례는 폐교 활용에 대한 주변의 눈을 틔우는 계기가 됐다.

실제 정선군은 2008년부터 몇군데 폐교시설을 매입했다. 정선아리랑학교, 옛 나전분교에 세워진 아라리인형의집, 선동분교 자리에 운영 중인 정선미술관 등 3곳이 대표적이다. 정선군은 이들 시설에 연 1200만~1500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산골마을 폐교를 활용한 문화공간이 지역주민들에게 문화적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함께 관광자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추억의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

정선아리랑학교 추억의 박물관에 가면 주변 볼거리와 먹거리를 소개한 자그만 안내 책자가 놓여있다. 정선아리랑학교에서 제작한 것으로 폐광촌으로 바뀐 함백 일대의 명소를 담았다. 1993년 폐광한 함백광업소 방제갱을 재현해놓은 방제갱도와 추억사진관,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배경이 된 소나무, 주민들의 힘으로 복원한 함백역, 해발 1466m의 철쭉명산 두리봉…. 그에 더해 닭갈비, 막국수 등을 파는 동네 식당 10여곳의 연락처와 추천 요리를 실었다.

"폐광촌에 홀로 선 작은 박물관이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자긍심이 되는 날을 그린다"는 진 대표. 아이들이 뛰놀던 매화분교는 '아늑하고 멋진 놀이터'였던 함백을 추억하는 곳이 되고 있다.

진용선 정선아리랑학교 대표 "폐교 활용 문화공간 1호, 지역과 소통하는 곳으로"

"강원도 지역에서 폐교를 활용한 '문화공간 1호'가 바로 여기다. 어릴 적 인근에 살았는데 동네 친구를 따라 이 학교에 놀러온 적이 있다. 폐교를 임대하기로 하고 이곳에 왔을 때 꿈만 같았다."

시인이자 '아리랑 연구가'로 이름난 진용선(49) 정선아리랑학교 대표. 정선군 신동읍 옛 함백초 매화분교장에 들어선 정선아리랑학교에서 만난 진 대표는 1997년 폐교에 발을 디뎠던 날을 떠올렸다. 정선아리랑학교 상설운영을 위해 폐교를 물색해온 그였다.

폐교 시설을 단장해 1998년부터 매화분교에서 정선아리랑학교의 역사가 다시 시작됐다. 그해 50명 가까운 수료생을 배출한 이래 꾸준히 정선아리랑학교를 이어갔다.

지역의 아이들을 위한 문화예술학교도 꾸렸다. 유년시절 마을을 찾았던 대학생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눈떴던 진 대표는 그 경험을 살려 사진, 연극, 문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쳐놓았다.

정선아리랑학교는 2005년 2월 '추억의 박물관'을 개관한다. 아리랑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 기간에 공간 활용 방안을 찾던 터에 문화관광부 복원기금을 지원받아 박물관을 조성하게 됐다.

추억의 박물관은 민요 자료 6700여점, 고문서와 고서 1390여점, 교육자료 5000여점, 근현대사 자료 7600여점 등 2만점이 넘는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진 대표가 오랜 기간 발굴하고 수집 연구해온 소장 자료만이 아니다. 지역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는 점이다. 동네 식당이나 가게를 이용하면 어렸을 적 갖고 놀던 동그란 딱지를 준다. 그게 박물관 무료 입장권이다.

"고립된 문화공간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 되고 싶었다. 폐교를 아리랑학교나 박물관으로 가꾸면서 현대식 건물로 바꾸지 않고 학교다운 모습을 간직하려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폐교 시설로 수익을 내기보다 정선아리랑학교 등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찾았으면 한다."

/정선=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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