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떵살암수과]미용실 원장 이상엽씨

[어떵살암수과]미용실 원장 이상엽씨
이발기술 접목하는 헤어디자이너
  • 입력 : 2011. 08.05(금) 2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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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에 보조로 입문한 뒤 한 길만을 걸어 미용실 원장이 된 이상엽씨는 서른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열정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진=강경민기자

열다섯 살 가난 때문에 선택한 직업
시행착오 끝 실력 갖춘 개인숍 운영
'패션뷰티투어' 구상 등 새로운 도전

어려서부터 삶의 고단함을 알아버린 소년이 있었다. 가난 탓에 생업에 내몰려야 했던 그 소년은 아버지가 된 지금까지 한 길만을 걷고 있다. 먹고 살 만해졌지만 그는 여유 대신 진지함과 열정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고 있다.

미용실 원장 이상엽(30)씨는 중학교에 다니던 열다섯 살 때 미용사에 입문했다. 4남1녀 중 막내였던 그는 지긋지긋했던 가난을 잊을 수 없다. "어릴 때부터 가난했어요. 아버지는 술로 세월을 보내셔서 어머니는 일본에, 큰형하고 누나는 육지에 돈 벌러 갔어요. 한 달 10만원으로 3형제가 생활했는데 쌀하고 김치를 사면 끝이어서 거지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때 손에 잡힌 일이 미용사였지만 헤어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길은 험난했다. 미용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해도 스텝-중상·준디(준디자이너)를 거쳐야 헤어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제주시 노형동 한 미용실에 스텝으로 들어가 바닥 쓸기부터 시작했던 그는 손님과 싸우는 일도 잦았고 직업에 회의를 느낀 적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처음 시작한 일 오기로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기술을 배우면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흔들리지 않았다. "청소를 배우는 단계인 스텝과 스스로 파마·염색을 할 수 있는 중상, 남자머리를 커트할 수 있는 준디를 거쳐야 헤어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데 일찍 시작한 덕분에 어린 나이에 헤어디자이너가 됐지요." 입문한 지 5년 만인 20살에 헤어디자이너가 된 그는 제법 큰 미용실 실장을 거쳐 4년 전 제주시 남문로터리 인근에 현재의 숍 '자르젠'을 차리게 됐다.

그가 운영하는 숍은 동네 미용실 규모지만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그를 거쳐 간 손님이 10년 가까이 찾아오는 단골이 되기도 했다. 중학생이던 손님이 성인이 돼서 찾아오고, 그에게 기술을 배우고 나간 제자의 어머니도 단골이다.

삶과 일에 '느림의 미학'을 철저히 적용한 덕분이다. "다른 미용실과 비교하면 알겠지만 저는 손님 한 분 당 최소한 15~2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늦으면 한 시간씩 걸리기도 하지요." 손이 느려서가 아니라 그만큼 세밀하게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돈이 되는 '붙임 머리' 같은 건 하지 않고 예약도 받지 않는다. 언제 바쁠지 또 언제 한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숍을 찾는 고객들은 1~2시간 정도 기다리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짜증 내는 일이 없다. 대신 그는 손님 머리를 하는 동안 쉴 새 없이 입을 놀려 수다쟁이가 된다.

그는 느리지만 한 단계씩 그의 꿈을 향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미용에 이발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이발사와 기술을 교류하고, 이발사 필기시험도 봤다. 한류열풍을 겨냥해 관광과 패션을 접목한 '패션뷰티투어' 사업도 구상 중이며, 경영서적도 보고 있다. "기술을 배우러 오는 친구들을 보면 '스펙'을 중시해 더 큰 곳으로만 가려고 하는데 한 단계씩 밟아나가는 게 더 실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나름대로 제 직업에 한 획을 긋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늘 새로운 걸 찾아 나서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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