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떵살암수과]"제주인재들 고향발전 기여 토대 쌓았으면"

[어떵살암수과]"제주인재들 고향발전 기여 토대 쌓았으면"
부경생 서울대 명예교수
  • 입력 : 2011. 11.05(토)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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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화학생리학 분야에 뚜렷한 연구 업적을 남긴 서귀포 출신의 부경생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본보와 만나 밝게 웃으며 앞으로의 연구계획 등에 대해 밝히고 있다. /사진=김치훈기자

평생을 연구에 몰두한 학자
농화학 생리학 분야에 업적
학술용어 정리 등에도 열정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즐기면서 하라."

제주 서귀포 출신의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부경생(71) 명예교수가 평소 자녀들의 교육에 사용하던 이야기다. 우리나라 생리학계 1세대 학자로, 50년에 가까운 세월을 농화학생리학 분야를 연구해오고 있는 노교수의 삶에 대한 자세였던 것 같다. 그를 서울대 수원캠퍼스에서 만났다.

부 교수는 12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적에는 집에서 소와 말 수백 마리를 키우고 있을만큼 형편이 넉넉한 편이었으나 4·3을 겪으면서 입산금지 등으로 인해 재산을 다 잃고, 아버지도 이 때쯤 돌아가 어머니 혼자 여러 형제를 키우느라 집안 형편이 크게 어려워졌다.

그는 어려운 살림살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와 함께 농사일을 돕게 되었지만 마음 속에는 공부를 더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박했기에 군대에 있던 둘째 형에게 공부를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 도움을 주겠다는 답변을 듣고 서울대에 합격, 공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어릴적 농사일을 하는 어머니가 병충해 때문에 겪는 고생을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농대에 입학했다. 부 교수는 어릴적 부터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혼자서 책을 보거나 자연을 관찰하고 알지 못했던 진실을 찾아내거나 발견하는 즐거움을 무엇보다 좋아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곤충학 석사를 취득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네소타 대학에서 5년 동안 곤충생리학 분야의 박사과정을 밟고 다시 캐나다로 건너가 5년간 같은 분야를 연구했다.

이후 아프리카로 건너가 국제적인 해충연구를 할 기회를 가졌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1978년 귀국, 1982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대학교 농생명공학부의 교수로 연구활동과 함께 제자들을 양성하는데 몰두했다.

이 과정에 아세아-태평양화학생태학회를 탄생시켜 화학생태학분야의 불모지였던 아세아 지역에 학문의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2006년 퇴임 후에도 현재까지 서울대 명예교수로 재직중이다. 한때 심장판막에 이상이 생겨 건강상 어려움도 겪은 노교수지만 학교에 남아 평생을 연구했던 곤총생리학과 화학생태학, 북한농업, 자연과학용어의 표준화 등을 정리중이다.

부 교수는 한국응용곤충학회장, 생물농약연구회장, 북한농업연구회장, 국제화학생태학회 이사, 한국농업과학협회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농수산학부장과 부원장까지 역임할 정도로 국내·외 농업학술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이제는 직접 농사도 지어볼 요량으로 고향에 조그마한 과수원과 집도 마련했다. 특히 제주방언에 남아 있는 과학기술 용어를 정리할 구상도 하고 있으며, 농업과학과 곤충학 분야의 학술용어들을 한글로 작명하거나 찾아 정리하는 등의 여생의 계획도 마련 중이다.

부 교수는 마지막으로 "제주도에서 자라나 밖에서 많은 업적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고향에서도 끌어안아 제주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수 있었으면 한다"고 고향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서울=김치훈기자 chki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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