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떵살암수과]명연숙 세계조가비박물관 관장

[어떵살암수과]명연숙 세계조가비박물관 관장
생명 다한 조개껍데기에 심은 예술혼
  • 입력 : 2012. 02.04(토)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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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다한 조개껍데기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명연숙 세계조가비박물관장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화가 꿈꾸던 시절 제주바다서 만난 환상빛깔
심미안 발휘해 세계에서 하나뿐인 작품 탄생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며, 조개는 죽어서 예술을 남긴다. 서귀포에 있는 세계조가비박물관에 가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지기 위한 운명을 지니고 탄생이라도 한 것처럼 조개껍데기의 다른 이름이 조가비다.

서양화가인 명연숙씨는 지난해 2월 서귀포시 서홍동에 세계조가비박물관을 열었다. 그가 조가비를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세계 유일의 조가비박물관을 탄생시키게 된 계기는 아주 사소한 경험에서 시작됐다.

경남 진해 출신의 그는 화가를 꿈꾸던 대학시절 지금의 남편을 만나 제주에 정착했다. 작가의 꿈을 접을 수 없었던 그는 80년대 초 어느 날 성산포 바다에 스케치하러 갔다가 환상의 빛깔을 내뿜는 조가비를 목격하게 됐다. "바닷가에서 스케치를 하는데 오방색에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빛깔까지 띤 조가비가 모래밭에 박혀 있는 것을 보게 됐지요. 무더기로 주워다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 후로 제주바다를 누빌 때마다 다양한 종류와 빛깔의 조가비가 눈에 들어왔어요."

집에 쌓여가는 조가비를 보던 그는 전문적으로 수집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외국까지 다니기 시작했다. 가까운 일본뿐만 아니라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열대지방,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스와 미국 등 가는 곳마다 그 나라의 특성을 보여주는 조가비가 있었다. 모두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었다.

"흔히 조개하면 먹을 것으로만 생각하지요. 그런데 전 인류의 얼굴이 모두 다 다르고 동물도 그렇듯이 조가비도 전부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특히나 조가비에는 자연이 그려준 아름다운 선과 오묘한 색이 들어있어 매료될 수밖에 없었어요." 누구보다 색에 통달한 화가이기에 조가비의 예술성을 간파했던 것이다.

종류와 가짓수가 많아지면서 아름다운 그 모습을 혼자 감상하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한국 패류학회 이준상 박사에게 조가비들의 동정(생물 분류학상의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을 받고, 조각가 권오균씨와 함께 각 조가비의 특성에 맞는 금속 받침대를 만들어 예술품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조형작품이 탄생하게 됐다.

"조가비를 모으기 위해 다녀본 나라마다 박물관은 있었지만 그걸 아트작품화하고 이렇게 연출해서 보여주는 곳은 없었어요. 그래서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시도해보자고 결심했지요." 그렇게 세계 유일의 조가비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내걸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제주에서만 나는 조가비와 깨알보다 더 작은 미세조가비만 모아서 보여주는 코너를 마련할 계획이에요. 조가비는 가만히 있지만 5개월마다 전시 구성을 바꿔 동적인 공간으로 만들어갈 예정이지요." 90년대 후반 미국 유학길에 나서 다시 그림공부를 하고, 이후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하면서 현직 화가로 활동하는 그다. 생명을 다한 조가비에 예술혼을 발휘해 새 생명을 불어넣은 그의 심미안이 여전히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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