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을 상징하는 돌을 디자인해 하트모양 등으로 벽을 꾸민 권형우 대표가 활짝 웃고 있다. /사진=이현숙기자
70년대 군복무 인연 제주에 새 둥지 "자연풍광에 문화콘텐츠 담아내고파"
제주의 속살을 따라 이어진 제주의 올레가 여러사람의 마음과 발목을 붙잡고 있다. 그래선지 올레로 인해 제주에 둥지를 튼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권형우(55)씨도 그중 한사람이다.
그는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포구 앞에 게스트하우스 '돌담에 꽃 머무는 집'까지 마련해 제주에 눌러 앉았다. 전세계 여행자들이 만족할만한 숙소를 만들겠다는 그의 희망이다. 그 뜻을 담은 이곳은 올레꾼들이 풍경을 즐기고, 제주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작은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6개월간의 공사를 거쳐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한번 와본 여행자들은 커뮤니티와 페이스북 등에 올리고 이같은 내용은 SNS를 타고 전파된다. 전세계 배낭여행객들이 애용하는 '호스텔닷컴'사이트에서 이곳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98점을 받았다. 그래선지 외국인 손님들이 유독 많다. 주인장의 안내로 살펴본 게스트하우스는 구석구석 세심하게 신경쓴 흔적이 역력하다. 주인장이 '강추'하는 공간은 대평바다가 액자속 그림처럼 눈에 쏙 들어오는 1층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자 미니갤러리. 또 가로 혹은 세로로 길쭉하게 만든 창들 덕분에 바깥 풍경을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다. 2층에는 여행서적이 잔뜩 꽂혀있는 서재가 눈길을 끈다. 외국 여행객들이 책읽기에 빠져드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세계적인 여행전문서 '론니 플래닛'의 창업자 토니 휠러가 다녀간 뒤 2013년 개정판에 소개하겠다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권씨는 이곳을 거쳐간 여행객들을 '꽃'에 비유했다. "베를린에서 온 아트디렉터 부부는 이곳에 대해 문화적 감성이 절로 배어나는 공간이라고 말해줬어요. 도종환 시인도 글을 남겼는데 감동이었죠." 머물다간 이들이 남긴 이야기는 방명록에 빼곡히 들어있다. 여기에는 사소한 생각부터 그림, 지도, 관광지 소개글까지 다양하다. 방명록을 꼼꼼히 읽는 것은 또다른 매력이다.
권씨는 왜 제주를 선택했을까. 그는 1970년대말 제주에서 군대 시절을 보냈다. 이후 대구에서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을 해왔다. 새정치국민회의 중앙당위원으로 열린우리당 창당에도 관여했지만 대구지역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공기업에서 근무를 하기도 했고 NGO 사무총장직을 하다가 이를 모두 정리하고 내려왔다. 공적인 일을 오래 하면서 가족들과 알콩달콩 살고 싶어진 것이다. 아내는 제주로 내려가는 것을 심하게 반대했지만 2년간 설득했고 그동안 제주로 여러차례 아내와 여행을 왔다. '작전'대로 아내는 제주에 살겠다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했고 곶자왈이 내려다보이는 문도지오름에서 '항복'했다.
제주에 오면서 그는 자연풍광에 문화적 콘텐츠를 담고 싶었고 그나마 옛길과 옛집이 남아있는 대평리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미니갤러리'를 통해 무료 전시공간을 내어주고 있다. 연말에는 지역주민들과 투숙객들을 위한 송년음악회를 열었다. 그는 언젠가 장기해외봉사를 꿈꾸고 있다. 50대 중반을 넘어선 그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그는 우후죽순 생기면서 '저가경쟁'만을 하는 게스트하우스 실태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글로벌 표준'에 못미치는 투숙환경은 결국 여행자들로부터 '한국의 게스트하우스는 형편없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품질경쟁'을 해야지 '가격경쟁'을 해선 안된다는 것. 그는 또 "살인사건 이후 확실히 나홀로 여성여행객이 줄었다"며 "올레길을 폐쇄하는 등 지나치게 민감하게 대응한 것 같다"는 의견도 보탰다. '범죄'가 없는 길이 되어야지, '사람'이 없는 길이 되어서야 되겠냐는 말이 가슴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