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제주 정착기
  • 입력 : 2013. 07.12(금) 00:00
  • /조상윤기자 sych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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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제주대학교병원 안과

서울토박이인 내가 제주대학병원으로 오게 된 계기는 제주도 인구가 50만명인데 소아안과 의사가 없어 환아와 보호자들이 진료와 수술을 위해 육지로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제주도 환자들 중 심한 사시를 가진 환자가 많다는 조언도 다른 병원의 소아사시 선생님들이 해주었다. 첫 진료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사시각이 타지역 환자들에 비해 심하고, 융합이 전혀 되지 않는 항상 외사시, 내사시에 하사근이나 상사근 기능항진, 해리성 상사위, 이상두위, 안진 등을 동반한 복잡한 사시가 많았다. 수술할 시간은 부족한데 수술이 필요한 아이들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촉박한 만 9세 아이들이 많고, 부등시는 또 이렇게 많은지….

연세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구수한 제주도 방언은 절반도 알아듣기 힘들어 보다 못한 간호사가 옆에서 통역을 해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조금씩 적응해 가면서 점차 진료실 밖의 풍경에도 눈길이 가는 여유도 생기게 되었다. 유채꽃, 왕벚꽃, 산수국도 지천에 피고, 사려니숲길에 아침 이슬 맞으면서 산보도 하고, 일반인에게 거의 개방하지 않는다는 차귀도에 하이킹도 하러 가는 등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작년 6월과 올해 7월에는 한국실명예방재단 주최로 제주시와 서귀포시 보건소에서 '취학 전 어린이 안과 정밀검진'이 있어 참가하였다. 특히 서귀포 지역은 제주시에 비해 인구도 적고, 개인안과 숫자도 적어 어린이들이 안과 검진 한 번 받기가 힘든 곳이다. 예상한대로 여러명의 굴절이상, 사시, 약시, 안검내반, 선천백내장 환아들을 진료할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경제적 사정이 좋지 못해 사시수술을 미뤄왔던 보호자들도 한국실명예방재단에 도움을 받아 자녀들을 수술할 수 있게 되어 어찌나 기뻐하던지.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제주도 검진 사업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재단에 건의하였더니 매년 제주를 포함시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벌써 제주에 온지 1년 반이 되어간다. 그 간 제주 방언에 귀도 트이고, 변화무쌍한 제주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우비도 몇 벌씩 구비하고 있다. 서귀포에서 온 환아에게 "너 고생해서 이 먼 곳까지 왔구나"라고 말 할 줄도 알게 되었으니 제주 사람이 다 된 듯 하다.

진료실 안에서는 아직 내가 가진 실력과 경험이 부족하여 모든 환자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 때도 있다. 그리고 수술 후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여 육지로 보내야 할 때도 있지만 지금 겪고 있는 환자에 대한 수많은 고민과 걱정거리가 훗날 더 나은 소아안과 의사가 될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혜진 제주대학교병원 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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