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잘못이 없다"는 그들에게

"난 잘못이 없다"는 그들에게
보넬리의 '우리의 관계를 지치게 하는 것들'
  • 입력 : 2014. 05.09(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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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죄(잘못)를 밀어내느라 갖은 애를 쓴다. 어떤 사람은 심한 자책에 빠지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나는 잘못이 없다"며 등을 돌린다. 바야흐로 죄책감을 잃어버린 시대다.

환경보호 강경론자인 어느 아버지. 그는 스포츠카를 산 뒤 자주 타는 일이 없을 테니 환경을 지킨다고 말하며 가족을 어이없게 만든다. 10대 청소년은 늦은 밤 골목에 있는 자동차의 사이드미러 20개를 발로 차서 깨놓은 뒤 "내 발이 다쳤다"며 고발하겠다고 우긴다. 어떤 남성은 여성 정신과 의사의 실력이 형편없어서 자신의 자살 시도를 막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지그문트프로이트대학교에 근무하는 신경학자이자 정신과의사인 라파엘 보넬리의 '우리의 관계를 지치게 하는 것들'은 실제 상담 사례 등을 제시하며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이를 부인하고 왜곡하는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을 다룬다. 근래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세월호' 참사를 통해 익숙하게 봤던 풍경인 듯 싶다.

지은이는 그런 사람들이 겉으로는 불안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신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와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이 잘못을 떨쳐내고 억압하느라 온 힘을 다하는 이유는 이것의 존재 자체가 고통을 의미하고 그 고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저자는 바로 그 관점에서 심리기제를 분석한 뒤 관계에 있어 항상 상처받는 쪽은 정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어느 누구도 일방적으로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각자의 몫을 인정하고 행위에 책임질 것을 주문하고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제는 '자기 잘못이다'는 뜻을 지닌 독일어 'Selber Schuld!'. 송소민 옮김. 시공사. 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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