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러스틴 외 '자본주의의 미래가 있는가'
거시 역사사회학 방법으로
자본주의 진단과 전망 제시
정확한 상황 인식이 더 중요
신자유주의, 세계화, 구조조정, 유연화 등의 낱말을 듣는 일이 많아질수록 살림살이, 세상살이가 더 고단해졌다는 한숨소리가 늘고 있다. 불안정한 삶과 어려운 경제 형편보다 더 심각한 건 조만간 나아지리라는 전망이 안보인다는 점이다. 나아가 한국경제, 세계경제의 복원력과 성장 동력에 대한 회의와 불안이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본주의 체제의 종말은 공상영화 속 한 장면처럼 여겨진다. 오래도록 그 체제가 우리의 삶과 의식을 지배해온 탓일 게다. 자본주의 체제는 무려 500여년동안 위기를 겪을 때마다 늘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진화해왔다.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는 우리에게 하나의 믿음이 된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묻고 있는 책이다. '거시 역사사회학'의 시각과 방법론을 공유하는 사회학자 5명이 참여해 현 세계 상황에 대한 진단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놓았다. 과도한 금융화와 세계적 불평등(양극화), 시장근본주의에 의한 자본주의 기반의 침식,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에 따른 지정학상의 지각변동, 전쟁과 생태위기의 위협 등으로 세계경제가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다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하지만 자본주의 전망에 대해선 생각을 달리한다.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랜들 콜린스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필연적이고 최종적인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고 평가하고 있다. 2050년을 전후한 시기에 '자본주의 이후'로의 이행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마이클 맨과 크레이그 캘훈은 현 세계가 큰 전환의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자본주의가 종말을 향한다고 보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붕괴나 어떤 대변혁보다는 저성장의 세계자본주의로 지속할 가능성을 내다본 마이클 맨은 오히려 핵전쟁이나 기후변화처럼 자본주의 체제 밖에서 오는 위기와 파국의 시나리오에 더 우려를 나타낸다. 게오르기 데를루기얀은 파국이냐, 존속이냐의 대립 구도에서 한발짝 물러나 자본주의에 대한 최초의 대안으로 떠올랐던 소비에트 체제의 운명을 되짚었다.
자본주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시나리오는 제각기 다르지만 이러한 차이를 넘어 5명의 저자들이 함께 도달한 결론이 있다. 상식적인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미래는 불확실하며 다양한 가능성들이 열려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이후는 죽음 같은 정체기도, 영원한 유토피아도 아니다.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다가올 도전의 시기에 더 좋은 방향 선택이 가능하도록 준비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의 정치적 의지와 무관하게 필연적으로 닥쳐올 미래는 없다. 그러므로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능성을 선택하도록 하는 인간사회의 노력과 의지가 요구된다. 5명의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강조하는 대목이다. 성백용 옮김. 창비.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