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수교 50년 제주와 일본을 말하다/제6부. 유후인 마을만들기](2)지속가능한 마을 만들기

[광복 70년·수교 50년 제주와 일본을 말하다/제6부. 유후인 마을만들기](2)지속가능한 마을 만들기
주민 행복한 마을이 훌륭한 관광지… 가치 공유 중요
  • 입력 : 2015. 06.22(월)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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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인은 연간 4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일본 대표 관광지이지만 관광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 저 혼자 튀는 건물을 찾기 어렵다. 주민들은 건물을 지을 때 그 소재와 색깔, 건물과 도로의 관계, 자연과의 조화를 자발적으로 지키고 있다.

관광호황 따른 역기능 최소화 위해 민관협력
독특한 마을경관 유지 주민들 스스로 노력
제주는 행정지원 중심 주민역량 강화 절실

"결국엔 지역주민들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인 관광지로 느끼게 하는 일입니다." 6년 전 제주를 찾았던 아베 준이치 유후인 관광종합안내소 부장의 말이다. 제주시와 제주국제협의회가 2009년 개최한 한·일 공동 마을만들기 국제세미나에서 그는 '생활형 관광지'라는 개념을 꺼냈다.

그래서일까. 유후인은 애초부터 대형 레저시설을 만들어 단체 관광객을 유치하는 온천 관광지와는 선을 그었다. 살기 좋은 마을 모습이 최고의 관광자원이라는 데 합의했기 때문이다. 눈높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건물 사이로 유후산이 펼쳐진 마을 풍경은 주민들이 지키려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마을만들기는 진행중= 유후인 인구(1만2000명)는 웬만한 제주도 읍면지역보다 적은 수준이다. 마을 면적은 128㎢로, 이와 비슷한 제주시 조천읍(150.681㎢)과 비교해도 절반가량 적다. 지난해 말 조천읍 인구는 2만782명이었다.

작은 산촌마을이지만 유후인은 일본 대표 관광지로 거듭났다. 해마다 400만 명 이상이 찾고 전체 관광객 5명 중 1명이 하루 이상 머문다. 이들이 소비하는 금액이 한 해에 140억엔(한화 약 1300억원)이다. 관광업이 활성화되면서 농업 등 지역 모든 산업에 파급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호황' 뒤에는 그림자도 있다. 가장 큰 것이 교통문제다. 특히 일본 최대 연휴인 골든위크나 휴일이 되면 마을 중심 거리는 꼬리를 무는 차들로 막힌다.

사람들이 모이니 상점도 늘었다. 현지인보다 외부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곳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로 인해 관광 수익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새로 들어서는 건물로 인해 일본의 옛 골목을 닮은 유후인의 풍경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마을 만들기가 주민 주도로 시작됐던 것처럼 문제 해결에도 자연스레 힘이 모였다. 교통문제도 행정에 맡기는 게 아니라 민관협력 조직을 만들어 해결책을 구상했다. 1970년 골프장 개발 계획에 맞서 '유후인의 자연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고, 이를 계기로 '내일의 유후인을 생각하는 모임'을 꾸려 주민 간 협의 기구로 삼아 온 점을 미뤄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을 경관을 지키기 위해선 여러 가지 장치를 뒀다. 건축물 규모와 높이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정감 있는 마을 만들기 조례'가 그 중 하나다. 그러나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주민들은 조례를 보완하기 위해 '유후인 건축·환경디자인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건물의 소재와 색깔, 건물과 도로의 관계, 자연과의 조화를 주민 스스로 지키도록 한 것이다.

유후인에서는 저 혼자 우뚝 솟거나 화려한 색을 휘두른 건물을 찾기 어렵다. 옛 건물과 새로 들어선 건축물이 한 골목 안에 조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마을 만들기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것은 결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라는 것을 유후인은 시사한다.

유후인에서는 주민 스스로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를 위해 고민한 흔적이 읽힌다. 골목마다 꽃을 심거나 주변에 나무가 많은 곳은 울타리를 나무로 만들어 자연스러운 멋을 살린다. 이같은 주민들의 노력이 모여 유후인 마을 전체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제주 마을만들기 과제는… = 제주도에선 올해 기준으로 105개 마을이 마을만들기 사업에 참여한다. 제주도는 1~5단계(예비마을→시범마을→추진마을→중앙사업공모→사후관리마을)로 나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결정짓는 것은 주민 역량이다. 마을 만들기에 주민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가 지원 기준이 된다.

제주에서도 일부 마을이 별도의 협의체를 두고 마을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수백 년 전 목축문화를 자원화한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가 대표적이다. 가시리는 마을만들기사업추진위원회를 따로 두고 집중도를 높인다. 마을회와 연계성을 띠면서도 별개의 조직으로 운영해 마을 만들기 사업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지역의 마을 만들기는 행정지원 제도에 따라 진행된다. 지원 사업이 경관과 체험시설 조성 등에 치우쳐져 있는 데 반해 주민 참여가 보장되지 않다보니 운영과 관리에 한계가 드러난다. 문순덕 제주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올해 초 발간한 '제주지역 마을만들기 사업의 문화적 접근과 실천과제'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문 연구원은 "현재는 단순히 행정지원 제도에 따른 마을만들기가 계획·추진되고 있어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의식이 부족할 수 있다"며 "행정지원 의존형에서 주민 주도형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주민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주민역량강화를 위한 사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제주도는 2008년부터 마을별 워크숍을 지원하고, 국내 우수마을 견학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마을 만들기 사업을 끌어갈 지도자가 부재한 경우 이 같은 교육은 일회성으로 그치기 쉽고,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과 마을 간의 중간 조직을 만들어 주민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유후인을 산촌마을에서 일본 대표 관광지로 거듭나게 한 것은 대규모 자본에 의한 개발이 아니었다. 지역자원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보전하려는 주민들의 다양한 시도였다. 당시 아베 부장이 꺼내놓은 유후인의 성공 전략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유후인의 성공은 다른 마을을 흉내 내지 않고, 우리 마을의 장점을 확실히 깨달은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거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것을 소중히 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특별취재팀=강시영·강경민·김지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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