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37년 제주도 마을을 누볐던 일본인 이즈미 세이치. 그가 몇 차례 제주를 답사한 뒤 30년이 흐른 1966년에 펴낸 '제주도(濟州島)'에는 당시의 도로 상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일본에 병합된 후 만들어진 전도 일주도로는 노면 경사를 적게 하여 차량의 교통을 편하게 하고 있음은 도외 교통의 발전과 더불어 도내 상품 경제의 발달을 촉진시켰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 일주도로가 해안에 뚫림으로써 '가족의 향해이동'이 일어나고 정의, 대정의 고읍(古邑)은 경제적인 중요성을 잃어 주된 행정기관인 읍사무소와 면사무소는 해안에 가까운, 그리고 이 도로에 면한 곳으로 옮겨왔다."
'신작로'로 불리던 도로가 지금처럼 제주섬 구석구석을 가로지르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5·16군사정변 이후 본격적으로 정비·확장이 이루어졌고 결국 5·16도로라는 이름이 붙은 한라산횡단도로는 시간과 거리를 앞당기며 제주사회의 변화를 이끈 계기가 됐다. 서귀포와 그 주변을 방문하는 관광객수는 1966년 10만명에서 1977년엔 50만명으로 크게 늘었다.
도로 개통과 걸음을 같이하듯 관광 분야에 중점을 둔 개발계획이 잇따른다. 1964년 제주도건설종합개발계획이 이름뿐인 계획으로 끝난 이후 1971년 정부가 추진하는 국토종합개발계획의 보조적 성격을 지닌 제주도종합개발계획 10개년 계획이 짜여진다. 1973년에는 제주도관광종합개발계획이 수립됐다. 1991년에는 제주도개발특별법이 제정되고 이에 근거해 제주도종합개발계획(1994~2001년)이 나온다. 제주도종합개발계획 기간 종료와 함께 제주도개발특별법은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으로 대체된다. 2002년에는 국제자유도시 틀에 맞춘 새로운 지역종합발전계획으로 법정계획인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이 등장했다.
지난주 제주도가 17억원 가까이 들인 '제주미래비전' 수립 용역 최종보고서 내용을 발표했는데 이를 두고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과 상충되는 게 아니냐"는 제주도의회 의원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생태·환경자원 총량보전, 해안변 그린벨트 도입 등 '청정과 공존'을 핵심가치로 내건 '제주미래비전'이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포함된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과 양립하기 어렵다는 거였다.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으로 대표될 수 있는 제주지역 관광개발은 공(功)만큼 과(過)가 있다. 관광산업이 주로 외부자본에 지배되면서 성장에 따른 이익이 주민들에게 환원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제기된 지는 이미 오래다. 도내에 산재한 토지가 개발과정에서 외지인 소유로 바뀌는 일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자연·생태계에 미친 악영향도 드러났다.
원희룡 도정이 100년 후까지 내다보고 야심차게 구상했다는 '제주미래비전'이 그간 제주땅에서 벌어진 거침없는 개발사업의 폐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고 하지만 1000여쪽의 보고서에 담긴 추진 체계와 추진 방안이 부실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도시경관을 해치는 고층 시설물이 금지되었는가', '지역생태자원과 지역사회자원이 조화로운가'와 같은 현안과제 가이드라인에 대한 체크리스트가 실제 개별 사업에 어떻게 적용되고, 얼마만한 강제성을 갖는지도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그래서일까. 벌써부터 '제주미래비전'이 구두선에 불과한 장밋빛 전망이 되는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진선희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