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하논분화구. 도심 복판에 이런 거대한 분화구를 거느린 서귀포는 축복의 땅이다. 하논의 마르 퇴적층에는 환경과 기후에 따라 그 특성을 달리하는 다양한 퇴적물이 지속적으로 유입·집적되어 '기후 및 환경 기록보존소'로서의 역할을 한다. 드론촬영 김희동천기자
다양한 지구환경의 변화를 기록하며 보존돼 온 하논분화구는 큰 변화와 시련을 겪는다. 약 500년 전 분화구 동쪽 언덕을 허물어 물코를 튼 결과, 이 곳에서 벼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물이 귀하고 논이 적었던 제주에서 화구벽을 허물고 물을 빼 벼농사를 지은 것은 당시 상황에서는 화구호를 잃는 것 보다 더 절박했을지도 모른다.
근세에 이르러 땔감을 하거나 감귤농사를 짓는 것 역시 주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것이었다. 대신 분화구 주변 화구 경사면을 덮었던 울창한 원시림이 사라지는 대가를 치러야했다. 도시개발로 분화구는 훼손되고 심지어 야구전지훈련장으로 활용하려던 때도 있었다.
WCC 총회 권고 이후IUCN 회원국들 압도적 지지로 채택상징성·사업 규모·국제공조 등 감안국책사업 추진 당위성 불구 지지부진범추위, 4·13총선 때 공약 반영 촉구
하지만 세월이 흘러 시대적 가치가 달라졌다. 하논분화구를 인류 전체의 소중한 자연유산으로서,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다. 다양한 연구와 논의를 거치면서 하논이 품고 있는 비밀이 속속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석학들은 하논이 갖고 있는 지구적·환경적 가치에 찬사를 보내면서 미래세대를 위해 제대로 된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주문하고 나섰다.
하논 위치도
하논분화구 복원보전사업은 생태도시 서귀포시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꼽힌다. 하논분화구복원범국민추진위원회(이하 하논범추위)는 지난 4·13 총선 후보들에게 5만년 생명정보가 담긴 국가의 보물 하논분화구 복원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공약에 반영시킬 것을 촉구했다. 하논분화구 복원사업이 사실상 한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깝고 답답한 상황 때문이다. 복원사업의 시행주체는 국가자원으로의 상징성, 천연자원의 성격, 사업의 규모, 자원환경복원의 기술, 국제적 공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국가가 직접 시행하는 국책사업이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하논분화구 복원은 지난 2012년 9월 제주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WCC)를 통해 전환점을 맞는다. WCC 회원 총회에서 압도적 지지(99.3%)로 발의안이 채택되자 국제사회의 관심속에 탄력을 받을 것처럼 보였다.
하논에 대한 WCC의 권고사항은 크게 세가지다. 생태계복원사업이 여러 국가, 지역 및 전 세계적으로 파급될 수 있도록 모니터링 등 6개 IUCN위원회(생태계관리, 교육·커뮤니케이션, 환경·경제·사회정책, 환경법, 보호지역, 종보전위원회, 소속전문가 1만1000여명)의 활동과 연계하여 하논분화구 복원·보전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권고했다. 대한민국 정부에는 하논분화구 자연환경복원 종합대책을 수립·시행하도록 했으며, 미래기후변화 예측에 기여하기 위한 학술 및 교육활동에서 상호 협조와 교류가 극대화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하논의 마르 퇴적층에는 환경과 기후에 따라 그 특성을 달리하는 다양한 퇴적물이 지속적으로 유입·집적되어 '기후 및 환경 기록보존소'로서의 역할을 한다. 퇴적층 연구를 통한 고기후·고식생을 규명하고 이를 활용하여 미래의 기후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지구환경의 타임캡슐'로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세계 첫 사례로 기록될 하논분화구의 상징적 복원을 통하여 자원의 가치를 극대화시키고 우리나라의 환경역량을 강화해 세계 환경중심국가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도 컸다.
◇특별취재팀=강시영 선임기자·이현숙·강경민·이태윤·김희동천기자
◇자문위원=김은식 교수(국민대, 복원), 김찬수 박사(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 식물), 양영철 교수(제주대, 제도 정책), 윤석훈 교수(제주대, 지질), 이석창 대표(하논범추위, 총괄)
"자연역사 증명… 완벽한 기록보관소"
세계 석학들의 진단과 평가
"세계적 기후변화 예측 중요한 열쇠
분화구 복원 프로젝트 기적적인 일
화구호 재현할 경우 영구보전 가능"
세계의 석학과 전문가들은 하논분화구의 가치와 더불어 복원보전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표명해 왔다.
"하논에 많은 고기후, 고생물의 자료가 존재하므로, 제주도는 고기후의 분석과 기후모델 및 미래 기후예측에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히토시 후쿠자와 교수, 일본 메트로폴리탄대, 2004)
"하논은 무분별한 개발을 지양해야 하며,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고 분화구에 호수 환경을 재현할 필요가 있다."(네겐당크 박사, 독일지구과학연구센터, 2006)
"하논 마르는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과거 동아시아 기후변화의 기록보관소로서 지역적, 더 나아가 세계적인 기후변화를 예측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히로유키 기타가와 교수, 나고야대 환경학대학원 , 2010)
"매년 쌓이는 마르호수 퇴적물은 과거 기후 및 환경변화의 이상적인 기록자이다."(아킴 브라우어 박사, 독일지구과학연구센터, 2010)
"하논분화구는 현지 고생태·고환경의 역사 및 제주도와 전 지역의 자연유산 역사를 증명하는 완벽한 기록보관소로 하논에서 동아시아의 기후변화, 식생변화, 생물다양성, 인간활동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미로슬로브 마코호니엔코 박사, 폴란드 아담 미키에비치대 , 2011)
"마르호수 복원과 퇴적물 보호프로젝트는 기적적인 일이고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며, 화구호를 재현할 수 있다면 영구히 환경보전이 가능할 것이다."(요시노리 야수다 교수, 일본 토호쿠대, 2013)
"하논분화구의 복원·보전을 위해 한국 정부에 협력요청하는 한편 IUCN(세계자연보전연맹) 산하 위원회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IUCN 줄리아 마르통 르페브르 사무총장, 2013 한라일보 단독 인터뷰)
"하논분화구 복원 프로젝트를 위해 IUCN도 참여·협력할 것이며 (전세계에)생태계복원사업으로 알려 나갈 것이다. 전세계 전문가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논의·추진해 나가고 대한민국 정부에도 협력을 공식 요청하겠다."(IUCN 미구엘 페르난도 부총재, 2013) / 강시영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