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총으로 글을 쓸 수는 없지 않은가 '2'

[목요담론]총으로 글을 쓸 수는 없지 않은가 '2'
  • 입력 : 2016. 11.03(목)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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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제대 한 지 1년9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딱 현역병 복무기간 만큼이다. 마침 1심이 아니라 고등법원에선 처음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무죄판결을 받았다. 입법을 통한 대체복무제의 도입은 아직도 중요한 과제이고, 나는 겨우 1년 차 예비군훈련만 받았기에 군대거부는 앞으로 7년간 계속 지켜봐야 될 나의 문제다. 물론 그 이후엔 나의 두 아들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로 귀결된다.

입대 전 나는 '병역의무자의 자녀 양육권 보장'을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병사의 양육수당' 지급을 건의했다. 국방부, 병무청, 국민권익위원회 등 다양한 관계부처에 민원을 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한겨레'와 '시사인' 등 나름 진보적인 언론에 제보했지만 "군대문제는 민감하다"는 이유로 취재를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스스로 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1주일 만에 편집·교열·인쇄·제본, 그리고 출판기념회까지 한 '총으로 글을 쓸 수는 없지 않은가'라는 책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팔리지도 않을 책을 긴급하게 만들어준 도서출판 각 관계자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입대 이틀 전 발간된 이 책은 입대 후 모든 지휘관에게 전달했다. 첫 자대 배치를 받았던 11사단의 중대장은 "군대를 부정하는 책을 썼다"고 병영생활지도기록부에 남겼다. 결국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 유자녀 병사에게 주어지는 권리인 '거주지 최기 부대 배치' 결정이 내려졌다. 즉, 다시 제주도로 돌아와 군복무를 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그 책을 출판하지 못했더라면 전출명령을 받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책을 받은 중대장은 대대장에게 보고했고, 대대장은 여단 기무반장에게 전달했다. 이외에 이 책은 육사와 해사 도서관에도 소장돼있다.

2013년 8월, 제주의 소나무는 말라죽고 있었고, 롯데시티호텔은 한라산을 가리며 우뚝 솟아있었다. 그리고 작년 1월까지 서귀포 중산간의 군 복지시설에서 병(兵)이자 병(丙)으로써 요리와 설거지도 하고,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도 치우며 전역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 시간 내 몸은 제주도에 있었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회적 교류와 참여도 할 수 없었고, 기무사의 불시 검열을 우려해 제대로 된 글도 쓸 수 없었다. 부대 건물 옥상에서는 해군기지와 예래휴양형주거단지 공사현장이 보였지만 어찌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인구가 60만명을 넘겼고, 관광객도 1000만명을 돌파한 것도 그해였는데, "일 만 해야하는 '일병'" 시절에는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역한 지난해 6월 국방부는 자녀 있는 병사에게 월 20만원의 양육수당을 올해부터 지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내 건의가 받아들여지는 순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제도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기존의 영유아지원제도와 중복된다는 이유에서 반대했다는 이유였다. 어이가 없지만 이렇게 아직까지 병역거부와 병사 자녀양육수당은 합법화되지 못했고, 내 신분이 미필에서 군필로 바뀌었을 뿐, 투쟁과제는 아직도 미해결로 남아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지금도 쉽지 않지만 21개월 동안 굳어버린 두뇌를 깨우고, 무뎌딘 칼날을 다시 벼리는 것이다. 저항의 무기로써 총과 칼보다는 말과 글이 더 유용하다는 것을 군대에서 경험적으로 깨달았고, 그것은 군 복무의 가장 큰 성과였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김동주 에너지민주주의센터(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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