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10)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10)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
사람의 향기 키워온 곳… 포근한 정감 흐르는 풋감마을
  • 입력 : 2016. 11.15(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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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운동장 언덕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본 풍경(위)과 마을회관 옥상에서 바라본 평화로운 모습(아래).

도내 최초 '범죄 없는 마을'… 살아 숨쉬는 삼무정신
풋감마을 체험관 등 마을사업 활발… 체험객들로 북적
다목적 운동장 활용한 마을 수익창출 모델 개발도 고민



포근한 정감이 느껴지는 마을이다. 사람은 태어나 사는 곳을 닮아간다고 했던가. 조상 대대로 거역할 수 없는 자연 풍토 속에서 사람의 향기를 키워온 것이다. 마을 주변을 둘러싼 동산에 올라 내려다보면 인정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선인들의 가르침이 여기에 머물고 있다. 1978년 제주 최초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된 것은 삼무정신이 살아 숨쉬는 마을공동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옛 이름이 '쉐질'이다. 옛날 목장지대로 쉐(소:牛)를 몰아가고 몰아오는 질(길:路)이라는 의미에서 지명과 마을 이름이 합치된 형태라고 한다. 18세기 중반 한자 표기에 牛叱里(우질리), 牛路里(우로리)라고 되어 있는 것은 '쉐질마을'을 뜻과 소리로 나타내려 했던 것. 지금은 한자로 召吉里(소길리)라고 쓴다. 마을에 좋은 일만 불러들이라고. 노로오름 정상 부근에서 흘러내리듯 유수암리와 상가리 사이를 뻗어 내려오다가 장전리, 용흥리와 맞닿은 지역에서 멈췄다. 마을 허리를 평화로가 동서로 지나면서 마을 남쪽과 북쪽을 구분하는 모양새다. 북쪽은 정주여건이 좋아 오래전부터 가옥과 농경지가 많고 남쪽으로 올라갈수록 마을공동목장과 오름, 조림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전체 면적 중 북쪽에 분지 형태를 띤 곳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공동체의 요람이다. 주변 마을들보다 땅이 비옥해 소출이 많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유하게 살았다고 한다.

농가 마당에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감.

고창봉(74) 노인회장이 전하는 설촌의 역사는 이렇다. "제가 어린시절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500여 년 전에 지금의 속칭 좌랑못 인근 신산모루 부근에 여러 가호가 흩어져서 살다가 세월이 흘러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취락이 형성된 것은 300여 년 전 허씨, 송씨, 성씨와 그 외 선조들이 입주하면서 마을의 규모를 키워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탐라순력도(1702)에 처음으로 기록된 것으로 봐서 17세기 이전에 이미 마을이 형성되어져 있었다는 것. 중산간에 비옥한 농토와 목축에 적합한 터전을 찾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이야기다. 좌랑못에 얽힌 사연은 후세에게 공동체적 가치관에 가까운 개념으로 구전되어지고 있었다. '조선 벼슬로 정6품 좌랑벼슬을 지낸 자가 지금의 좌랑못 자리(당시는 연못이 아니었다고 함)에 큰 집을 짓고 살았었다. 좌랑은 권세를 이용해 인근 마을 주민들을 괴롭히고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아 많은 원한을 샀다.

풋감마을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만든 갈중이.

횡포를 부리던 좌랑이 죽자 주민들이 몰려가 그 집을 헐고 그 자리를 파서 넓은 연못을 만들어버렸다.' 사람들을 괴롭히면 천벌을 대신해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징벌한다는 생각. 좌랑못 사연을 반면교사로 삼고 이웃의 소중한 가치를 마을공동체의 근원이 되게 한 마을이다. 자연스럽게 강력한 결속력이 발생하게 되고 이러한 규범적 가치를 동력으로 마을사업도 활발하게 이뤄져 왔다. 2008년 농어촌지역 특화사업 마을로 선정돼 '따뜻한 정감이 흐르는 풋감마을'을 테마로 도로 가로수와 운동장 주변에 감나무를 심었다. 다음해 2009년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에 착수하게 된다. 한국농어촌공사 선정 제주시 녹고뫼권역(소길, 장전, 유수암)사업이 그 내용이다. 2011년에는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돼 체험프로그램을 통한 마을발전 방향이 마련되고 농어촌체험 휴양마을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주민의식은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바뀌어갔다고 한다. 그 성과 중에 대표적인 것이 작년에 완공한 다목적 운동장이다. 야구와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마련된 훌륭한 운동장 시설이 중산간 농촌마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놀랍다.

양태경 이장

양태경(64) 이장이 밝히는 당면과제와 숙원사업은 그동안 전개해온 마을사업들에 대한 지속적인 발전전략 마련에 고민이 집중되어 있다. "풋감마을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체험객들이 많아 체험관련 사무장이 별도로 있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앞으로 풋감마을의 명성을 가지고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상품 개발과 일거리 창출 방안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숙원사업은 노인당이 노후해 새롭게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을 전체적으로 보면 전통적으로 살아온 취락지역 외에 많은 곳에 사업장과 주택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마을 규모가 커져가고 있는 현실에서 도로 여건이 뒤따라야 하겠습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전원적인 이미지를 보유한 농촌 마을에 어떤 기준과 전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공존의 틀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안타까움이 드러난다. 이상수(39) 청년회장의 마을에 대한 희망은 다목적 운동장 시설을 활용해 마을회 수익사업 모델을 만드는 것이었다. "육지에서 야구팀들이 전지훈련을 하러 오곤 합니다. 평소에도 훈련하러 오는 팀들도 있지만 숙박시설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간 훈련을 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단순하게 운동장 시설만을 가지고 수익을 발생시키기에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시설비 항목만을 가지고 마을만들기 사업을 하고 있는 행정적 관점을 바꿔서 운영을 통한 수익성에 도달할 수 있도록 행정지원 방안이 마련되어져야 하겠습니다. 자연속에서 연습하는 선수들의 반응은 참 좋습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이 마련된다면 풋감체험 또한 1박2일 프로그램도 운영할 수 있어 더욱 활성화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생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마을만들기 사업 계획은 예산규모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현실적 요구다. 민박 형태로 계속 전지훈련 선수를 받기에는 다가올 문제점이 더 많다고 한다.

지난해 완공한 다목적 운동장.

'쉐질'에서 발전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소걸음은 느리지만 중량감이 있다. 천천히, 그래서 신중한 발걸음이다. 지금까지 의욕적으로 펼쳐온 마을공동체 사업들이 그랬다. 결실이 필요하다. 행정기관이 나서서 사업성 중심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여건과 자발성을 따진다면 소길리가 선택과 집중 대상이라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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