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무형문화유산]제주해녀의 어제와 오늘

[인류무형문화유산]제주해녀의 어제와 오늘
칠성판 지고 물 속 들어가던 제주해녀, 그 질곡의 역사
  • 입력 : 2017. 01.02(월)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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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성산읍 해녀들이 겨울비가 내린 궂은 날씨 속에서도 삶의 터전인 바다로 물질을 나서고 있다. 한라일보DB

조선시대 사료에 ‘해녀’ 처음 등장
일제시대 강인·근면함 ‘상징’ 부각
등재 기점으로 보존방안 찾아야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열아홉 번째이며, 제주에서는 '제주칠머리당영등굿'에 이어 두 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유네스코는 해녀를 전 인류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인정하면서 여러 권고사항을 제시했다. 그 중에서 단 하나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단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다. 제주해녀의 역사를 되새기면 제주가 지켜야 할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 해녀

지금까지 전해지는 사료를 보면 해녀는 '잠녀(潛女)' 또는 '잠수(潛嫂)'로 불려왔다. 그러다가 해녀(海女)라는 명칭과 함께 최근까지 사용해오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제주도 해녀 진료비 지원 조례'를 통해 2015년 1월부터 '해녀'로 통일해 사용하고 있다. '삼국사기'와 '고구려본기'에 전해지는 옥(珂) 진상 기록과 고고학 발굴 자료 등을 토대로 해녀의 기원을 삼국시대 이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해녀가 사료에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조선시대에 접어들어서다.

제주에는 1443년(세종 25년) 9월 제주목사로 부임한 기건이 바다에서 전복을 따는 잠녀들의 고통을 목격한 뒤 3년 재임 동안 전복을 밥상에 올리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1628년(인조 6년)부터 1635년(인조 13년)까지 8년간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한 이건이 유배 중에 쓴 '제주풍토기'에는 미역을 채취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잠녀'가 등장한다.

1706년(숙종 32년)부터 1711(숙종 37년)년까지 제주에 유배된 김춘택은 해녀에 관한 최초의 인류학적 보고서라 할 만한 '잠녀설'을 남겼다. 그는 잠녀와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테왁·비창 등의 물질 도구와 불턱, 숨비소리, 진상의 폐해 등을 상세히 기록했다. 특히 그에게 생활고를 토로한 잠녀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칠성판을 지고 물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을 만큼 생사를 넘나들어야 했던 제주여인들의 고달픈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복 하나를 따려다가 몇 번이나 죽을 뻔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와 함께 작업하던 사람이 급히 죽거나 얼어죽거나 돌과 벌레 같은 동물 때문에 죽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는 비록 요행히 살아났지만 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 생존권 투쟁

해녀가 제주 여성의 강인함과 근면함의 상징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가 제주 어장을 침탈하면서부터이다. 제주 주변 바다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 형성하는 천혜의 어장이어서 다양한 어종을 보유하고 있다. 사철 전복과 소라, 미역, 감태 등을 채취할 수 있는 환경으로 해녀가 발달할 수 있었지만 일찍이 선진어업을 받아들인 일제는 제주바다를 수탈기지로 삼았다.

일본 어민들은 1860년대부터 제주에 잠수기선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제주에는 총칼로 무장한 일본인 어민들에게 제주의 어민들이 무차별 살해되는 사건이 이어진다. 1898년 1월 제주에 유배된 김윤식은 '속음청사'에 "멸치잡이배와 일본 사람의 채복선(採鰒船·전복잡이배·잠수기선)이 바다 가운데에 가득하다"고 1899년 여름 용연 앞바다의 풍경을 기록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러한 수탈이 더욱 악랄하게 자행된다. 이후 잠녀조합을 결성한 잠녀들은 일제를 상대로 생존권 투쟁을 펼치기 시작한다. 1932년 1월 구좌면과 정의면 일대 잠녀들은 세화오일장이 열리는 날 세화리 주재소를 순시하던 제주도사 다구치(田口禎熹)를 포위하고 "잠녀의 권익을 옹호하라"며 격렬히 투쟁해 다구치가 달아나는 일도 있었다. 당시 투쟁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돼 잠녀 수십명이 검거되고 6개월 동안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세기 말 일제의 제주어장 침탈로 해산물 채취량이 급격히 줄어들자 다른 지역으로 물질을 나가면서 등장한 '출가해녀'들의 수가 이 즈음 급증하기 시작했다. 해녀들의 진출지역은 한반도 남부에 머물지 않았다. 한반도 북부 지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의 다롄(大蓮)과 칭다오(靑島),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반경을 넓혔다. 현재 독도를 지키는 유일한 해녀 역시 제주 출신이다.

# 고령화 가속

현재 제주도에는 해녀증 보유 기준으로 전직과 현직을 포함해 9227명(2015년 말 기준)의 해녀가 등록돼 있다. 이 가운데 고령과 이직 등으로 실제 물질을 하지 않는 전직을 제외하고 전업으로서 물질을 하는 현직 해녀는 4377명이다. 연령별로는 30~39세 10명, 40~49세 53명, 50~59세 563명, 60~69세 1411명, 70~79세 1853명, 80세 이상 487명이다. 최고령 해녀는 물질 경력 77년의 1923년생 이봉숙(우도면) 할머니였지만 지금은 물질을 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연소는 1985년생 정소영(추자면)씨이다.

1970년 1만4143명에 달하던 해녀는 1980년 절반 수준인 7804명으로 급감했다. 이어 1990년 6827명에서 2000년 5789명, 2010년 4995명으로 계속 감소했다. 최근에는 3년간 연평균 66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청·장년층의 기피와 고령화 추세로 말미암아 1990년까지만 해도 50세 이하와 50세 이상 비율이 48.5:51.5였지만 현재는 50세 이상 해녀가 전체의 98.6%를 차지하고 있다. 신규 해녀 가입은 2012년 14명, 2013년 14명, 2014년 29명, 2015년 13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편 제주 바다에는 해남도 현재 7명이 활동하고 있다.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해남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의 해남이 각각 44년의 물질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어 제주시 추자면 해남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해남이 각각 31년과 23년 동안 물질을 해오고 있다. 서귀포 대정읍 하모리 해남 5년, 제주시 용담동 해남 1년, 서귀포시 남원읍 해남도 1년의 물질 경력이 있다.

# 제주해녀 콘텐츠

제주에서는 해녀문화를 세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매년 9월 '제주해녀축제'를 열고 있다. 이 축제는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과 세화항 일원 바다에서 열린다. 해녀학술대회와 해녀굿, 새내기해녀물질대회, 불턱가요제, 바릇잡이 체험, 싱싱 수산물 시식회 등의 인문과 자연, 생활과 신앙이 어우러진 해녀축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와 함께 세계적인 축제로 도약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해녀 문화의 소멸을 우려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이를 보전하기 위한 활동도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해녀학교를 꼽을 수 있다. 해녀문화를 젊은 세대에게 전수하기 위한 취지에서 주민자치 특성화 사업으로 2007년부터 시작한 제주시 한림읍 한수풀해녀학교는 지금까지 45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2011년과 2016년에는 주한미국대사가 이곳을 찾아 물질체험을 하고 명예해녀증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5년에는 서귀포시 법환좀녀마을해녀학교도 설립돼 도내외 참가자를 대상으로 잠수기법과 수산물 채취, 건조방법 등 실무교육을 수료한 졸업생을 배출했다.

지난해 9월에는 제주 출신 고희영 감독이 제주 우도 해녀들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이 개봉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을 차지하고, 영화진흥위원회 2016 다양성영화 개봉지원작품으로 선정돼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어 영국 아시아영화제에 초청돼 대영박물관에서 상영됐으며, 이탈리아와 스웨덴 공영방송에서도 방영됐다. 제주해녀문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문화 콘텐츠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한 셈이다.

이와 함께 해녀박물관은 사진자료집 '바다의 어멍 제주해녀' 등 16종의 책자를 발간했으며, '제주해녀의 생업과 문화' 등 49종의 해녀 관련 연구자료가 출간되기도 했다. 제주해녀문화 아카데미와 해녀박물관 어린이교육이 진행됐으며, 해녀민속 공연도 계속돼왔다. 세계적인 보도사진 작가그룹 매그넘 등이 사진집을 출간하는 등 사진과 다큐영화, 소설 등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가 제작되거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기점으로 제주해녀를 활용한 콘텐츠는 더욱 풍성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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