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 (2) 노우정 '바다의 술책' 대표

[책과 사람] (2) 노우정 '바다의 술책' 대표
"바닷가 앞에 책방, 최선입니다"
  • 입력 : 2017. 06.09(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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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술책' 노우정 대표. "책을 읽다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책방을 차린 그는 오래도록 버텨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커가고 싶다고 했다. 진선희기자

한때는 밭이고 바다였을 그곳에 도로가 뚫리고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납작납작한 집들이 모여있던 마을은 예전의 풍경이 아니다. 제주 관광지도에 안나오는 귀한 지명을 간직했던 곳이지만 그 이름도 잊혀지고 있다.

해안도로를 타고 책방을 찾아 나서며 문득 30여년전 추억이 떠올랐다. "무엇이 그 순박했던 풍경을 앗아갔을까." 마음 한켠이 답답해질 때쯤 눈앞에 책방이 나타났다. 제주시 한림읍 귀덕 해안도로에 자리잡은 '바다의 술책'이다.

술책은 중의적 의미를 지녔다.

술과 책, 어떤 일을 꾸미는 꾀나 방법을 일컫는 술책. 어느 것이든 좋다. 너른 바다를 품에 안고 책을 보며 맥주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책방이 아닌가.

손님 중엔 여행자들이 많다. 낯선 풍광에 더해진 책 한권의 문장이 그들을 위로해주는지 모른다.



사서 경험 살려 귀덕해안로에 감수성 오롯한 주제별 분류법
30개국 '어린 왕자' 특별전시 "오래 버텨 지역 문화공간으로"


노우정 대표도 물설은 땅에 발디딘 여행자였다. 14년간 일했던 학교 도서관 사서를 그만두고 짐을 쌌다. 발길이 멈춘 곳은 제주였다. 언젠가 서점을 운영하리라 했는데 뜻밖에 기회가 찾아왔다. 한수풀해녀학교에서 만난 어느 부부의 카페 건물이 비게 되자 임대해 책방을 차렸다. 지난 1월이었다.

'내가 미쳤지, 바닷가 앞에 책방이라니…'. 개점 초기 이런 문구가 적힌 펼침막을 입구에 걸어놨더니 여행중이라는 초로의 신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진짜 미쳤는지 보러 왔소." 그저 바라만봐도 좋을 바다 앞에 애써 책방을 연 그를 격려하려는지 책 10권을 사갔다.

전직 사서가 만든 책방이지만 서가에 꽂힌 책들은 십진분류법과 무관하다. '나로부터 너에게 이르는 길', '삶에 대한 질문과 수많은 해답들', '사랑, 참 아프다' 등 500종의 도서를 주제별로 묶어놓았다. 책방 주인의 감수성이 오롯하다. 작은 서점이지만 유통사와 맺은 인연을 살려 1주일마다 신간을 들여놓는다. 장정이 화려하진 않아도 텍스트 위주로 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어느 출판사의 도서는 직접 구매해 판다.

30개국 언어로 출간된 '어린 왕자'는 특별전시되고 있다. 대부분 노 대표가 여행지에서 구입한 것으로 '어린 왕자'는 그의 오늘을 만든 책이다. 중학교 1학년때 선생님이 권해준 '어린 왕자'를 처음으로 도서관이란 곳에서 읽고 난 뒤 펑펑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린 왕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책은 그런 존재일 것이다.

책방 유리창엔 이런 글이 쓰여있다. '책을 읽다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차린 책방'. 노 대표는 "오래 버티며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커가고 싶다"고 했다. 건물 일부는 북스테이로 꾸려지고 있다. 책방 운영 시간은 오전 9~밤 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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