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의 빈집을 고쳐 만든 이듬해봄의 김진희 대표. 편안함이 있고 과하지 않은 공간으로 책방을 꾸려가고 싶다고 했다. 진선희기자
빈집 고쳐 마을안 골목길에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책 등특별함 없지만 편안한 공간 심야 책방 운영 등 소통 늘려
납작한 집 한채가 있는 사진 아래 이런 글귀가 있다.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이곳'. SNS에 써놓은 문구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지 오랜 폐가였지만 그는 그 집 앞에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주 이주 6년차가 되는 지난해 9월의 일이다. 그는 일손을 빌려 집안 구석구석 고치고 다듬었다. 손봐야 할 곳이 많았지만 소득도 있었다. 먼지를 털어내니 고색창연한 문짝, 책상 따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의 이듬해봄. 작년 가을 빈집을 개조하는 공사를 시작해 지난 5월 문을 열었다. 겨울을 나느라 작업 기간이 길어졌고 그 이름처럼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늘 꿈꿔오던 책방을 꾸리게 됐다.
책방은 올레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골목 맨 끝에 있다. 차를 이용한다면 큰 길에 세워두고 동네 마실 가듯 또박또박 걸어가야 다다른다.
제주도 작은 책방 투어가 유행처럼 벌어지고 있는 이즈음, 이듬해봄 김진희 대표는 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곳에 서점을 차린 게 다행이라고 했다. 오래전부터 주민들이 터잡은 마을에 낯선 차량이 소리를 내며 드나드는 일이 폐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키작은 풀들이 얼굴을 내민 마당을 지나 안거리에 들어서면 제주 가옥에서 흔히 보던 나무 마루가 먼저 발끝에 닿는다. 시멘트 바른 돌담벽도 정겹다. 마루를 가운데 두고 세 개의 방이 서가로 변했다. 특별함은 없지만 편안함은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과하지 않게 꾸미려 했다.
이듬해봄이 주목하는 책들은 시, 소설, 에세이, 사진집 등이다. 독립출판물부터 대형 출판사에서 낸 책들까지 걸쳐있다. 김 대표는 판매 중이거나 입고 예정인 책에 대한 짤막한 감상평을 수시로 SNS에 올려놓는다. 수다한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에게 가만가만 위로를 건네는 책들이 눈에 띈다. 헬싱키, 오키나와 등 떠나고 싶은 이국의 사연도 자리잡았다.
여행객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갖춰놓은 듯 하지만 이듬해봄 방문객들의 절반은 대정 주민 등 제주 사람들이다. 마을 안에 생겨난 만큼 문턱이 높지 않은 서점으로 가꿔가겠다는 마음이 커지는 이유다. 대정에 살며 초등생 아들을 둔 학부모인 김 대표는 기회가 되면 같은 동네서 자라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한 한글모임을 책방에서 열 계획이다. 이번 주말엔 '인연'을 주제로 '오래된 집에 머물다'의 박다비 등 세 명의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첫 '심야 책방'을 운영한다. 직장인 등 낮시간대 이듬해봄을 찾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획됐다.
김 대표는 "초심을 잃지 않는 봄날의 따스함으로 이듬해봄을 이끌어 가고 싶다"고 했다.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요일엔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