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양돈업계의 사과, 이번엔 믿어도 되겠습니까?

[백록담]양돈업계의 사과, 이번엔 믿어도 되겠습니까?
  • 입력 : 2017. 09.04(월) 00:00
  • 문미숙 기자 m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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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는 서민들이 즐겨먹는 '국민고기'나 다름없다. 서울, 경기 등 전국에는 100% 제주산 돼지고기만 파는 음식점인 '제주 돼지고기 인증점'이 23곳 있다. 지난해 11월엔 홍콩 번화가에 있는 한국식당 3곳이 '제주 흑돼지 인증점'으로 지정됐다. 제주도의 심사를 받아 제주 돼지고기 인증서를 내건 식당의 등장은 그만큼 제주산의 인기가 높다는 얘기일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인기좋은 제주산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양돈업계가 지난 1일 기자회견을 열고 "도민들에게 죄송하다"며 여러차례 머리를 숙였다. 한림읍 양돈농가에서 축산분뇨를 제주의 생명수인 지하수 함양 통로인 '숨골'로 불법 배출한 사실이 확인되며 도민사회에 파문이 확산되자 사태 수습에 나선 것이다. 양돈업계는 이 날 재발 방지책과 위법농가의 제재조치, 낡은 분뇨처리시설 개선, 환경보전기금 조성 대책도 함께 내놨다.

제주지역 양돈장은 차량 이동이 잦은 평화로를 중심으로 중산간 서부지역 등에 290여곳이 있다. 2015년 도내 전체 축산조수입 9349억원 가운데 양돈업 매출은 4140억원으로 축산업의 한 축을 담당한다. 농가당 평균 수입이 14억원이다. 생산비를 제외하더라도 짭짤한 소득으로, 가축분뇨 처리비용이 부담스럽다곤 할 수 없다.

그런데 제주 이미지에 먹칠을 해온 축산악취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어보인다. 오래 전 기억이 떠오른다. 2008년 여름 당시 제주도지사가 구좌읍과 애월 등 냄새민원이 잦은 13곳의 양돈장에 공무원을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상주시켰던 적이 있다. 악취저감시설 가동 여부 점검에서부터 돈사 내부 바닥에 눌어붙은 돈분의 완전 제거와 매일 한 차례 이상 물청소를 하도록 관리감독하는 게 공무원의 역할이었다. 당시 "개인 소유 양돈장 청소까지 공무원을 동원해 감독해야 하느냐"는 따가운 여론과 함께 다른 한편에선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는 얘기들이 있었다. 제주에서 한·아세안 정상회담(2009년)이나 전국체전(2014년) 등 굵직한 행사가 열리는 시기가 되면 행정에선 축산 악취를 막기 위해 농가 지도 단속에 진땀을 뺀다.

견디기 힘든 축산악취를 야기하는 양돈업계를 바라보는 도민 시선은 곱지 않다. 풍광좋은 제주를 만끽하러 온 여행객 입장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극단적일 수 있지만 '청정 환경을 자랑하는 관광지 제주에 악취를 풍기는 양돈업은 적합하지 않은 산업'이라는 이들도 있다.

물론 이번 가축분뇨 불법 배출을 둘러싼 파문과 관련해 억울한 농가도 적잖을 것이다. 꼬박꼬박 축산분뇨를 합법적으로 처리하고 냄새 저감을 위해 시설현대화 등 나름의 투자를 해 왔는데 같은 양돈업자라고 파렴치한 이로 매도당하니 말이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불거지는 축산분뇨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은 양돈산업 전체가 져야 하는 몫일 수밖에 없다. 축산분뇨의 숨골 불법 배출과 관련해 양돈업계가 사과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청정제주환경'은 양돈업자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 든든한 뒷배경이었다. 그런데 축산분뇨 처리 비용을 아끼려 불법 배출하는 몰염치로 청정제주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행정에서 악취를 잡겠다며 수백억원의 돈을 쏟아부은들 양돈농가의 근본적인 인식변화 없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축산 악취를 없애겠다는 양돈업계의 자정 결의대회가 한 두번이 아니었던 터라 이번에 도민들에게 사과하며 내놓은 대책의 실천은 두고 볼 일이지만 이번만큼은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임시대응책이 아니길 도민 모두가 지켜볼 것이다.

<문미숙 정치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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