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관조의 삶과 멋

[하루를 시작하며]관조의 삶과 멋
  • 입력 : 2017. 10.18(수)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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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 지식이 남보다 뛰어나서 교직자가 되려면 경사(經師)는 될 수 있어도 인사(人師)는 되기 어렵다. 인사가 되려면 뛰어난 학식뿐만 아니라 육신과 심혼이 건강하고 스승다운 삶을 영위해야 한다. 스승다운 삶에서 발현되는 무언의 체취가 제자들의 영혼에 전이(轉移)될 때 그들은 인간답게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다. 스승다운 삶이란 학생애·교직애·학문애 등 3애 교육에 정진함을 뜻한다.

먼저 학생을 사랑하는 일이다. 예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했고, 석가는 일체중생개유불성(一切衆生皆有佛性)이라 했듯이 사랑과 자비심으로 학생들의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 예수를 신앙하듯, 석가를 신봉하듯 학생을 사랑할 때 사랑의 힘이 발현하게 되고 교직의 보람을 느끼게 된다. 둘째는 교직을 사랑하는 일이다. 직업은 여러 가지 말로 표현되지만 소명의식을 전제로 하는 게 천직이다. 인성, 창의성, 수월성 등의 교육도 천직관에 의해서 출발되고, 교육혼도 이끌어낼 수 있다.

불타는 교육혼을 견지하고 3애 교육을 추진해 나아갈 때 교만, 비굴, 근심, 두려움, 부끄러움, 무안 등의 육불송(六不頌)을 신념화하고 지켜 나아가야 한다. 셋째는 교직의 전문성을 높이는 학문을 사랑하는 일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연구하며 가르치는 일은 스승을 스승답게 만들어 가는 순리의 길이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노자는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이라 했다. 사람은 땅을 본받아야 하고, 땅은 하늘을 본받아야 하고, 하늘은 도를 본받아야 하고, 도는 자연을 본받아야 된다는 뜻이다. 자연 속에는 무언의 언어와 침묵의 언어 등 무정설법이 무한하게 숨어 있으니, 마음의 눈으로 찾아 읽고 가르침을 배움에서 찾으라는 뜻이 아닌가.

교직자의 탐구와 창조의 정신은 미래 사회와 국가 발전에도 직결된 문제이고 과제이다. 그래서 교직자의 삶은 수범적 삶이어야 한다. 학생들은 스승으로부터 표면적 지식과 정보, 예체능 교과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식, 인생관, 가치관 등 정의적 영역의 모든 것을 함께 배운다.

더욱 스승은 학생들에겐 동일시(同一視) 대상이다. 따라서 선생님의 일의적인 목적의식과 학생들의 다의적인 목적의식을 균형있게 숙지하고 교육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영어 교사가 영어 시간에 영어를 가르치지만, 학생들은 영어 교사에게 영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선생님의 외모, 말솜씨, 글씨, 옷매무새, 걸음걸이 그리고 선생님의 가슴속에 숨어있는 가치관 인생관 등을 배우게 된다. 동시학습의 원리에 의해 전이가(轉移價)를 높이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비가 아비다워야 자식이 자식답듯이, 스승이 스승다워야 제자가 제자답게 성장할 것이다. 이는 동일시 학습원리에 의한 가르침이고 배움이다.

스승의 삶은 언제나 세속적 가치를 외면하는 삶이지만 청출어람(靑出於藍)의 보람으로 사는게 멋있는 스승의 삶이다.

교직생활은 초반에 방황하고 중반에는 철이 들고 후반에는 보람을 느낀다는 말처럼 노스승의 모습에서 칠기품(七氣品)의 멋을 발견한다.

눈에선 총기, 얼굴에선 화기, 몸에선 생기, 언어에선 재기, 행동에선 덕기, 생활에선 윤기, 인품에선 향기를 피워낸다. 한평생 가난하고 춥더라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처럼 선비의 여유와 멋을 넉넉한 마음을 이고 살아가는 것이 스승의 삶이고 멋인 듯싶다. <부희식 제주교육사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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