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살아남았다면 그것만으로 '위대한 도약'

[책세상]살아남았다면 그것만으로 '위대한 도약'
55년생 장석주 작가의 '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
  • 입력 : 2017. 12.01(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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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는 거의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로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를 지배하는 권한을 행사하지 못했다. 이제는 늙고 병들어가는 우리에게 아버지 노릇은 벅찬 일이다. 자식을 출가시키는 일에 목돈을 써야 하고, 아버지로서 권리보다 잉여의 의무에 더 허덕이는 까닭이다. 우리 세대가 맡은 아버지라는 직분에 부권적 이데올로기나 권력은 없다. 다만 가족부양을 떠맡으며 긴 노동을 한 탓에 어깨가 굽은 '슬픈' 아버지들이다."

1955년생 장석주 작가의 '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은 이렇게 시작한다. 베이부머는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후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다. 이제 막 나이 60을 넘겼거나 가까워지는 이들이 그에 해당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시기에 출생한 베이비부머는 가난의 기억을 트라우마처럼 안고 살아왔다. 인구 과밀 속에 둘도 많다며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 구호를 외치던 시절에 세상 밖으로 나온 그들은 채변 봉투에 받아간 똥으로 기생충 검사를 받고 미국 구호물자로 만든 옥수수가루 빵을 배급받아 먹었다.

베이비부머에게 가장 강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의 집권기 18년을 고스란히 건너며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웠고 고등학교 때는 처음 생겨난 교련 수업을 들었다. 청년 시절에는 '전환시대의 논리' 등을 읽으며 의식화를 겪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에 문화 충격을 느꼈던 그들은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세월호 참사 등 재난의 목격자이기도 했다. 장년이 되어서는 IMF 외환 위기로 구조조정과 실직을 경험한다.

작가는 자전적 고백에 더해 다섯 벗의 입을 빌어 이같은 베이비부머의 삶을 풀어내고 있다. 그들의 기억을 따라가는 동안 저마다 다른 양태의 모욕과 예속을 겪으며 동시대를 지나왔음이 드러난다. 처자식을 책임지는 일이 목숨보다 엄중했기에 회사의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사표를 내지 못했다는 그들이다.

그래서 작가는 지금껏 살아남은 베이비붐 세대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예기치 못한 재난과 재해, 승자 독식 사회의 경쟁과 자살의 유혹마저 견디고 살아남았다는 건 1969년 달에 첫 발을 디뎠던 닐 암스트롱의 말처럼 '위대한 도약'이다. 지나온 세월의 부피를 통해 인생이 전혀 공평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베이비부머를 향해 작가는 말한다. "살아남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살아남음으로 이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어떻게 기여할 것이냐 하는 일이다." 연두. 1만4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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