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37)] 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37)협곡

[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37)] 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37)협곡
알락 하이르한산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협곡에 핀 꽃
  • 입력 : 2017. 12.03(일) 19:00
  • 조흥준 기자 chj@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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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목축. 사진=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서연옥·송관필·김진·김찬수

포기마다 꽃줄기 많고 높이 높지만
거센 바람 등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식물체보다 긴 꽃줄기 모두 누워 있어

김찬수 박사

어젯밤 탐사대는 사막에서 야영을 했다. 우리는 항상 개인천막을 사용하는데 단체로 식사를 하거나 회의를 해야 하고, 짐을 보관해야 하는 공간도 필요하므로 그 중 하나는 6인용 천막으로 준비한다. 만약 폭풍우가 몰아닥치면 일부는 자동차속으로 대피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공간은 늘 확보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탐사에서 천막은 총 5개다.

준비를 마치고 출발한 것이 아침 8시였다. 구름 한 점, 그늘 한 평 없는 초원 샤르가보호구를 관통해 투그락솜에 도착한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이곳은 꽤 큰 마을이니 당연히 식당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서 오늘은 늘 준비하던 주먹밥조차 생략한 상태였다. 그러나 웬걸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았거나 식재료가 없다며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다음 마을은 부갓솜이다. 이곳에서 약 2시간 거리다. 준비한 비상식량은 늘 먹던 거라 손이 가지 않는다. 이때 줌부레박사가 슬그머니 건넨다. 비스킷인데 아주 부드럽고 맛이 있다. 그녀는 오지를 조사했던 오랜 경험으로 어떤 위험에서도 자기를 지킬 준비를 하고 다닌다.

이곳에서 출발한 지 불과 3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자동차가 잠시 멈추고 사방을 살피는가 싶더니 기우뚱거리며 출발한다. 이런 가파른 경사를 어떻게 내려가며 혹시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나올 수는 있는 걸까? 우리는 완전히 협곡 속에 갇히고 말았다. 양쪽이 50m 내외 높이의 절벽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구불구불 올라가는 것이다. 이 계곡을 흐르는 물은 우리가 목표로 하는 알락 하이르한산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물이다.

잎많은두메자운.

계곡의 양쪽 절벽에는 콩과의 골담초속, 묏황기속, 그리고 한라산에도 분포하는 황기속의 식물들이 보였다간 사라지곤 하고 있다. 그 외에도 국화과, 십자화과로 생각되는 꽃들도 피어 있다. 모두가 우리가 관심이 있는 종들이지만 어쩔 수 없이 그냥 지나치고 있다. 오늘 내로 우리는 부갓솜을 거쳐 알락 하이르한산 정상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슬아슬한 계곡을 한 시간 이상 가자니 자동차가 전복되지는 않을까 계곡에 빠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온몸에 힘을 주게 된다. 긴장이 계속되기도 하지만 자동차 엔진에도 무리가 있을 것 같아서 잠시 쉴 겸 조사를 시작했다. 식물들의 높이가 약 30㎝로 높은 편이다. 식물의 밀도도 높아지고 샤르가보호구에서 봤던 것과는 판이하게 싱싱하다.

가축에게 뜯기지도 않고 밟히지도 않은 온전한 식물들이 꽤 많았다. 그중에 눈길을 사로잡는 식물이 하나 있었다. 높이 25㎝ 내외로 잎은 복엽인데 한 포기에 약 40매가 나 있다. 소엽은 마치 아주 작은 침엽처럼 생겼는데 잎 한 개당 몇 개인지 아주 많았다. 꽃줄기는 한 포기에서 15개 정도로 많이 나 있다.

특이하게도 이 꽃줄기들은 식물체의 높이보다 훨씬 긴데 모두 누워 있는 것이다. 꽃은 한창 피었지만, 아직 꽃이 피기 전인 꽃줄기들도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이 지역의 기후조건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정이 된다. 바람은 거세고, 모래와 같은 이물질들이 같이 몰아치기 때문에 공중으로 곧게 서봤자 넘어지거나 꺾일 게 뻔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럴 바엔 차라리 이렇게 누워버리는 게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어 성숙할 때까지 견디기에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식물은 잎많은두메자운(옥시트로피스 미리오필라, Oxytropis myriophylla)이라는 종이다. 이 속의 식물 중에는 한반도에도 분포하는 게 있다. 두메자운과 털두메자운이다. 이 두 종은 함경남북도와 평안북도에 분포한다. 따라서 이 종도 두메자운속이므로 우리말 이름은 이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 맞다. 미리오필라는 라틴어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잎이 많은'이라는 뜻이다. 이런 의미를 살려 '잎많은두메자운'으로 명명한다.

한 10분 정도의 조사를 마치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림잡아 1000마리는 족히 됨직한 염소와 양이 섞인 가축 떼를 만났다. 마침 우리의 길을 가로지르려는 순간이었으므로 잠시 기다리게 되었다. 멀리 목동이 말을 타고 이를 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글=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서연옥·송관필·김진·김찬수

아름다운 알타이 아가씨 목동

저기서 말을 타고 가축을 돌보고 있는 목동은 카메라로 찍고 보니 의외로 젊은 여성이었다. 하얀 차양 모자를 쓰고 얼굴을 완전히 가릴 정도로 넓은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감출 수 없이 긴 머리는 밖으로 나와 바람에 날린다. 아가씨임이 분명해 보인다. 청바지에 승마용 부츠를 신고 전통외투 델에 노리개를 단 가죽배낭을 들쳐 멨다.

알타이의 목동

이런 시골에서 보기 어려운 세련미가 느껴지는 차림새다. 등자(몽골어 더러우)에 발을 딛고 안장 위에 올라탄 자세가 반듯하고, 두 손으로 고삐와 채찍을 움켜쥔 모습에서 넘쳐흐르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몽골대원 엥헤는 주저하지 않고 울란바토르에서 대학생활을 하다 방학을 맞아 집에 온 이곳의 딸이라고 설명한다.

말 역시 짙은 갈색 털에 윤택이 있고 체형이나 달리는 자세가 아직 한창나이의 준마로 보인다. 얼굴엔 굴레를 씌웠고, 입에는 재갈을 물렸다. 안장은 앞뒤로 가리개(부렉)가 균형 있게 갖춰졌고, 안장장식(바와르)도 살짝 보인다. 언치(뎁스)는 외투에 가려 보이지 않으나 다래(걸럼)는 화려한 문양으로 수를 놓았다. 그리고 뒷부분에 짐끈(지렘)까지 거의 완벽하게 마구와 말 장식을 갖췄다.

멀리 울란바토르에서 한창 멋 부리고 해야 할 공부도 많은데 자기를 위해 고생하실 부모님 일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는 마음 하나로 이렇게 달려왔다니 가상하기도 하고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이 지역을 탐사하다 보면 의외로 학생임 직한 젊은이, 심지어 어린이 목동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몽골대원들에 물어보니 방학을 맞아 부모님을 도우러 온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아마 이들의 대부분은 울란바토르에서 왔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려면 적어도 이틀은 걸렸을 것이고 차비도 적지 않게 지급했을 것이다. 오는 길은 우리가 왔던 길을 따라오게 되는데 경험한 바와 같이 열사의 사막과 모래폭풍의 언덕과 세차게 흐르는 강을 수차례 건넜을 터이니 그 고생이 오죽했을까?

몽골은 인구 1만 명 당 대학생 수가 470명을 넘는다. 이것은 세계적으로도 상위권에 속하는 비율이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과거 교육열이 높아 논밭, 소를 팔며 자녀교육에 열성적이었듯 몽골도 이 척박하고 혹독한 환경에서 손이 부르트게 가축을 기르면서도 자녀들만큼은 서울로 유학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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