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의 가치 '사회적경제'] (7)협동조합의 도시 원주

[함께의 가치 '사회적경제'] (7)협동조합의 도시 원주
협동조합간 협업으로 자립 생태계 꿈꾼다
  • 입력 : 2018. 05.08(화) 00:20
  • 문미숙 기자 m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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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협동운동 1세대의 생명사상 토대
신협·친환경농업 등 다양한 협동조합 생겨
2003년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결성해
마을공동체·사회적기업 등 36개조직이 조합원


강원도 원주는 협동조합의 발상지로 불린다. 1960년대부터 진행된 협동조합운동은 현재 마음만 먹으면 협동조합에서 먹을거리를 구입하고, 아플 때 치료를 받고, 아이를 맡기고, 문화공연을 즐길 수 있을만큼 협동경제가 삶 곳곳에 단단히 뿌리내렸다.

지난 4월 중순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 지하상가에 터잡은 사회적협동조합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를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관계자와 함께 찾았다. 이 곳에는 협동조합이 탄탄하게 뿌리내린 방법을 배우러 2016년과 2017년 각각 97개, 116개 단체가 방문했다.

원주지역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등 36개 사회적경제조직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는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협동조합인 육성을 위한 청소년 대상의 교육. 사진=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제공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밝음신협, 원주한살림 등 8개 조직이 2003년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결성하면서 출발했다. IMF를 겪으면서 협동조합도 예외없이 구조조정이나 폐업의 길을 겪었고, 제도나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협동조합간 협동이 필요하다는 위기의식이 활동가들 사이에서 생겨난 것이다. 또 IMF 이후 새로 발생한 실업, 빈곤, 양극화 등 사회적 문제를 '지역'에서 민간의 힘으로 극복해보자는 의지를 담은 네트워크에는 현재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개인 등 36개 사회적경제조직이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다. 전체 조합원이 3만5000명(중복조합원 포함)으로, 원주시 인구 10명 중 1명꼴로 협동조합 조합원이다.

이승현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사무국장은 "'협동과 자치, 생명의 도시를 향하여'를 슬로건으로 내건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2000년대 초반 창립할 수 있었던 것은 60~80년대의 원주 협동조합의 역사적 배경이 있어 가능했다"고 했다.

원주 협동조합 운동의 중심에는 1965년 천주교원주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부임한 지학순(1921~1993년) 주교와 평신도로 생명사상을 주창한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무위당 장일순(1928~1994년) 선생이 있다. 현장에서 서민과 농민의 생활개선운동을 지원하고 실천한 이들은 스스로 삶의 질을 개선하자며 1966년 천주교인 35명을 중심으로 강원도 최초의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고리채로부터 농민과 소상공인을 보호해 사람답게 사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원주협동조합운동의 시작이었다. 그 후 69년에는 진광중학교에 협동조합 교육기관인 '협동교육연구소'를 열어 정규과목에 협동조합을 포함시키고, 한국 최초의 학교신협인 '원주진광신용협동조합'이 창립된다.

매달 두 차례 협동조합 광장에서 상생마켓을 열어 친환경 농산물과 사회적경제 단체의 생산품을 선보인다.

1971년에는 원주가 협동조합 도시로 자리잡는데 견인차 역할을 해온 '밝음신협'이 창립했다. 1980년대에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공생 등 '생명사상'을 토대로 도시와 농촌이 농산물을 직거래하며 상생의 길을 여는 원주한살림소비자생협의 전신인 원주소비자협동조합이, 2002년에는 원주의료생협(현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등 다양한 협동조합이 생겨났다.

다양한 사회적영제들이 모인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가 추구하는 가치는 개별 협동조합간 구체적인 협업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데 있다. 이업종 조직간 협업과 연대를 통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인데, 협동조합간 협동의 실천은 취지만큼 쉽지 않았다.

"사업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공통분모를 찾아갈 수 있도록 조율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여러번의 토론을 거쳐 협업에 대한 조합 대표자들의 이해를 구하고 나면 대표들이 다시 각각의 조합원들을 다시 이해시키는 지난한 과정이 기다린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개별 조합원들이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또한 연대와 소통, 신뢰를 기본으로 하는 협업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이 사무국장은 말한다.

네트워크에선 협업체계를 만드는 일을 핵심 축으로 다양한 사업들이 꾸준히 진행된다. 2016년부터 매달 둘째주 금·토요일 네트워크 사무실이 위치한 협동조합 광장에선 '상생마켓'이 열린다. 친환경농산물과 사회적경제단체의 생산품이 소비자와 만나는 자리다.

또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중요한 교육사업도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2014년에 강원도교육청과 지역특화교육사업을 협약, 중·고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올해도 30명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이 예정돼 있다. 올해 처음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사회적경제를 교육할 강사양성과정이 5월부터 들어간다. 교육 후에는 하반기에 4개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사회적경제 영역이 멀잖아 우리 사회에서 유의미한 경제지표들을 생산해 내고, 보다 다양한 삶의 영역으로 확장돼 원주시민이 협동조합운동에 보다 쉽게 접근하면서 함께 잘사는 원주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데 있다.



수익보다는 '사람 중심'의 인술

원주의료사협, 협동 모델로 탄생
소비자 중심의 '적정진료' 지향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개인의 건강을 넘어 지역사회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주민들을 찾아가 스스로 건강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진=원주의료사협 제공

원주 밝음신협 3층에 위치한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원주의료사협')은 '협동조합간 협동' 모델로 탄생한 사회적기업이다. 기존 원주에서 활동하던 밝음신협, 원주한살림, 원주생협 세 단체를 중심으로 공동출자해 기반을 조성하고 원주시민의 참여로 2002년 창립, 밝음의원과 밝음한의원이 개원했다. 조합원이 의료기관의 실질적인 주인인 셈이다.

원주의료사협은 공공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우리네 의료현실 속에서 '적정진료'라는 소비자 중심의 사회서비스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일부 병원에서 수익을 위해 하는 '과잉진료'와는 거리가 멀다.

"끊임없이 진료, 검사, 수술을 해야 매출이 발생하는 게 일반의료시스템이다. 특히 건강증진은 돈이 안돼 의료기관에선 외면한다. 그런데 환자가 오면 감기니 푹 쉬라는 처방을 내리거나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항생제나 주사제 처방을 최소화하는 우리 병원의 진료방식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지금이야 항생제를 안쓰는 병원을 찾아가지만 개원 초기엔 왜 주사나 항생제 처방을 해주지 않느냐는 환자들의 불만이 적잖았다"고 박준영 원주의료사협 이사장은 말한다.

조합원이 건강해지면 도시도 건강해진다는 믿음으로 적정진료와 질병의 에방에 집중한 결과는 연간 5000만원 안팎의 적자를 안겼다. 2012년엔 거의 파산 직전까지 갔다. 지속되는 적자에 2015년엔 한의원도 접어야 했다. "일반 의료기관이라면 진작에 문을 닫았겠지만 조합원들의 희생과 지역사회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현재 원주의료사협 조합원은 1450세대로, 진료받는 환자의 30%정도가 조합원이다. 조합원은 비급여의 10~20% 할인혜택을 받는다.

원주의료사협은 노인재가장기요양기관인 '길동무'를 운영, 방문간호·방문요양·병의원 이동지원서비스 지원과 가족의 심리적 안정을 돕기 위한 가족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5년부터 NH농협투자증권 임직원 지정기탁사업으로 농촌지역 의료사각지대 건강지원사업도 펼치고 있다. 왕진가방을 든 의료진이 직접 농촌 주민의 삶터로 찾아가 주민의 건강을 돌보면서 대면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또 원주지역의 22개 종합병원과 의원·한의원·치과·약국 등 22개 의료기관이 2014년 의기투합해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최저 빈곤층을 돕기 위해 꾸린 '빈곤층 의료지원 자원봉사 의사회(빈의자의사회)'의 중심에도 밝음의원이 있다. 원주시와 읍면동에서 의료지원이 필요한 취약계층을 발굴·의뢰하면 빈의자의사회 대표를 맡고 있는 곽병은 밝음의원 원장이 진료하고, 입원이 필요한 경우 다른 의료기관을 통해 입원으로 연계한다. 진료비 중 본인부담금은 빈의자의사회가 조성한 기금으로 납부한다.

이런 노력으로 원주의료사협은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이 사단법인 아쇼카 한국과 진행하는 '모어 헬스(Making More Health) 체인지 메이커' 심사위원 특별상(2016), 우수사회적기업 공로를 인정받아 고용노동부장관 표창(2017)도 받았다.

박 이사장은 고령화시대 노인층 통합돌봄서비스의 사회적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 지바현의 사회복지법인 바람의마을이 1인1실의 사회복지 모델을 만들었는데, 인간중심의 관점에서 어떻게 돌봄서비스와 협동조합-지자체간 파트너십을 만들어갈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그다. 이는 고령화사회 돌봄서비스의 질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문제와 연관된다. "노인요양시설에선 삶의 막바지 인간적인 존엄이 부족하다. 노인요양 수요는 재가가 70%, 시설이 30%인데, 정부의 재정투입은 50대 50으로 시설 위주"라고 그는 지적한다. 문미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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