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60)] 제2부 알타이의 한라산-(20·끝) 몽골 알타이, 한라산 식물 종의 기원

[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60)] 제2부 알타이의 한라산-(20·끝) 몽골 알타이, 한라산 식물 종의 기원
서로 다른듯 닮은 알타이와 제주… 탐사 여정 마무리
  • 입력 : 2018. 06.25(월) 00:00
  • 이태윤 기자 lty9456@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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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를 마친 뒤 탐사결과를 정리하는 모습. 사진=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서연옥 송관필 김진 김찬수.

해발 1950m를 통과하면서 한라산을 생각했다. 위도라는 변수를 차치하고라도 이제부터 보이는 모든 것들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봐 왔던 어떤 곳보다도 높은 지역에서 보는 것들이다. 이런 생각은 탐사대원 모두가 같다. 그 중 김진 대원은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까지 가 볼 요량으로 혼자 떨어져 등반을 시작한다. 지형이 너무나 가파른데다 보이는 거의 모든 식물들이 처음 나타나는 것들이니 조사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하르하이라아산 위치(구글맵 캡쳐).

해발 2000m에서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바이칼분취(사우수레아 바이칼렌시스, Saussurea baicalensis)가 나타났다. 이 종은 1810년경에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수 인근에서 채집되어 다른 속으로 명명한 것을 1911년 미국 식물학자 벤자민 링컨 로빈슨(1864-1935)이 지금의 학명으로 정리했다. 높이 30~40㎝, 직경 1㎝의 굵은 줄기가 가지를 치지 않고 외대로 곧추 서는 게 특징이다. 해발 2000m 이상 3200m까지 높은 산 초원에 돌출한 바위 주변, 둥그런 돌들이 널려 있는 곳에서 자란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중국 후베이의 동링산과 자오우타이산에 자란다는 보고가 있다. 2000년 7월 독일과 몽골 공동조사단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 바얀올기아이막 송기노국립공원의 해발 2000~2750m 지역에서 채집한 것이 가장 최근의 기록이다. 이 식물은 세계적 희귀종으로 몽골에서도 이곳에 와야 볼 수 있다. 우리말 이름은 학명의 뜻을 살려 '바이칼분취'로 했다.

바이칼분취.

수염용담.

솔나물.

갯취(제주도 새별오름).

풀밭에 핀 꽃들, 다양하고 화려하다. 그 중에는 다른 꽃들에 가릴 정도로 키가 작은 종들도 있다. 10~30㎝의 작고 가느다란 식물이 보인다. 부드럽고 연약해 보여도 크고 파란 꽃이 5개나 달렸다. 3~10쌍의 잎이 자루 없이 마주 난다. 수염용담(겐티아놉시스 바르바타, Gentianopsis barbata)이다. 한라산엔 같은 과의 종들이 여럿 있지만 수염용담속 식물은 없다. 그러나 백두산, 북수백산, 혜산진에 자란다는 보고가 있다.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러시아 등 중앙아시아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몽골에서도 비교적 높은 고산초원에 자라며, 좀 드믄 편이다. 우리말 이름은 학명 '바르바타'가 '수염이 난'의 뜻을 가지므로 이렇게 붙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종의 꽃잎을 보면 톱니처럼 오돌토돌하게 생긴 가장자리의 맨 아래쪽에는 수염처럼 기다랗게 돌기들이 나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몽골을 거쳐 중국을 지나 백두산까지를 영역으로 하고 있는 종이다. 빙하기 어느 시기엔 한라산까지 퍼져 있었을 것이다.

솔나물(갈리움 베룸, Galium verum)도 노랗게 꽃을 피웠다. 몽골초원에서 비교적 흔히 보인다. 키는 보통 30~60㎝인데 크게 자라면 1m를 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널리 분포하고 있다. 한라산에 자라는 것은 보통 키가 20㎝ 이하로 이 종으로서는 너무 작아 애기솔나물이라 하여 따로 한라산특산식물로 취급하기도 한다. 이 종은 인도아대륙, 중앙아시아를 거쳐 시베리아와 동아시아까지가 원산지라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유럽, 아메리카 등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이것은 환경적응력이 뛰어나 여러 가지 악조건에서 적응하면서 형태적으로도 다양하게 변신할 수 있음을 뜻한다. 한라산의 애기솔나물은 이런 점에서 솔나물의 한 변종이 아닐까 생각되고 있다.

이 지역 최고봉에 가장 근접한 김진대원, 오른 쪽 위로 보이는 봉우리가 진오름.

야생에서 흔히 볼 수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솔나물은 나라와 부족에 따라 다양하게 이용했다. 흔히 초원에 사는 사람들은 이 식물을 말려 매트재료로 사용했다. 이 식물에서 발산하는 쿠마린향이 벼룩을 쫓는다고 하여 방충제로 쓰기 때문이다. 어떤 부족은 치즈를 만들 때 밀크 고형제로 또는 섬유 염료로 쓰는 곳도 있다.

해발 2000m를 한창 지나고 있을 무렵 우리의 눈을 의심하게 하는 식물이 나타났다. 갯취(리귤라리아 타케티, Ligularia taquetii)가 아닐까? 갯취는 한라산 특산식물이다. 최근 거제도에서도 발견된다고 하지만 자생지의 규모나 조건으로 봐서 한라산이 원산지라고 할 수 있는 종이다. 그런데 이 머나먼 알타이, 그것도 북단 러시아와 국경지대에 자라고 있다니! 갯취는 제주도에서 활동했던 에밀 타케신부가 채집한 것을 1910년 프랑스인 레비유와 바니어트가 신종으로 명명한 것이다. 그 후 1914년 일본인 나카이가 제주도식물조사보고서에서 속을 달리하여 지금과 같은 학명을 붙였다. 제주도 서부지역 오름에 주로 분포하며, 최근에는 불놓기를 하는 새별오름에 집단적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 자라고 있는 종은 리굴라리아 알타이카(Ligularia altaica)로 되어 있다. 현재 꽃은 지고 씨앗이 성숙해 가는 과정이어서 꽃을 정확히 관찰할 수는 없으나 여러 형질에서 갯취와 닮았다. 같은 종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 종 역시 몽골의 제주도 목장경영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말 이름은 '알타이갯취'로 하였다.

하산을 서둘렀다. 알타이이의 하르하이라아산의 어느 봉우리, 해발 2200m 남짓 올라갔다. 위험을 무릅쓰고 한라산 식물들의 고향을 찾아 탐험하는데 앞장선 김진 대원의 노고를 길이 기억하고자 이를 진오름(Jin Uul)으로 명명했다.

알타이는 중앙아시아에 있지만 한라산의 식물들과 관계가 깊은 종들을 우리는 많이 봤다. 제주도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고 알타이는 사막으로 둘러싸인 섬이다. 서로 격리된 환경이지만 지사적으로 관계가 깊다. 그에 따른 생물의 진화사도 관계가 깊다.

본 탐사보도는 오늘로서 끝난다. 그동안 성원해 준 독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특히 구글번역기를 동원하면서까지 꼼꼼히 읽으며 환호해 준 몽골의 독자들께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우리는 오늘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탐사의 길을 갈 것이다.

글=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서연옥 송관필 김진 김찬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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