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어떤 풍경' 고희화 시인

[저자와 함께] '어떤 풍경' 고희화 시인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만 힘내면 된다"
  • 입력 : 2018. 12.13(목)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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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500자 수행'으로 제주 걷기여행 등을 기록해온 고희화 시인은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갈 2모작을 벌써부터 겁내기 싫다"고 말했다.

시각장애 후 제주 걷기여행
2016년 11월 말부터 시작

1일 500자 수행 기록 모아


'아침에 핸드폰을 보는데 왼쪽 눈이 부옇게 안개가 피어 온다'는 첫 문장에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는 간신히 운전대를 부여잡고 사무실로 향했다. 업무를 위해 노트북을 열었지만 글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그는 안과로 달려갔다. 지금 그는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

제주 고희화 시인이 낸 '어떤 풍경'은 2016년 11월 20일에서 걸음을 뗀다. 시력에 이상이 왔음을 비로소 알아챈 날이다. 매일매일 일기처럼 적어나간 그의 글은 이같은 고난에서 출발하지만 책장의 끝인 2017년 8월 22일의 일들은 그럼에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걸 보여준다.

'어떤 풍경'은 '1일 500자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SNS에 올렸던 글을 "인생의 1모작을 마무리하는 심정"으로 엮은 책이다. 시인은 지난해 첫 시집 '어머니의 집'을 낸 후로 시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꼬박 석 달동안 시집을 준비하느라 애쓴 영향이 컸다. 그때와 지금을 경계로 삼은 '어떤 풍경'의 글들은 눈을 시술한 뒤 틈날 때마다 떠났던 제주섬 도보여행이 주를 이룬다.

그는 제주도 곳곳을 두 발로 걸으며 사람사는 모습을 만났다. 버스에서, 길 위에서, 마을에서 부딪힌 사람과 풍경이 전하는 이야기는 때때로 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어느 날은 그 다음에 무슨 일이 펼쳐질지 궁금증이 인다.

"밖에 나와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걷기에 방해될 정도의 비는 아니다. 집으로 들어가 배낭을 챙기고 나온 시각이 10시20분이다. 이제부터는 서쪽에서 서귀포까지 가는 날이다."(2017년 2월 5일)

사라봉 입구에서 시작해 마라도까지 이어지는 그의 여정엔 고요하고 너른 품의 자연만 자리잡은 게 아니다. 악다구니하며 사는 우리네 삶이 있다. 시인은 연민어린 시선으로 그런 인생을 바라본다. 눈물이 흔치 않은 '어떤 풍경'에서 시인이 크나큰 상실감을 드러내는 반려견에 얽힌 동행과 이별 대목이 그것과 잇닿는다.

시인은 이즈음 글을 쓰고 보기 어려워 이번 원고를 묶는 동안 제주시각장애인복지관 공익요원들이 읽어주는 걸 곁에서 들으며 교정작업을 벌였다. 나이 예순인 그는 이 책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 모른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할 나의 2모작도 잘 견딜 수 있을까? 어제 오늘 생긴 일도 아닌데 겁부터 내기는 싫다.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만 힘내면 된다." 제주콤. 1만2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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