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플러스] 벚꽃 피는 날, 4월 제주의 그날을 기억하는 곳으로

[휴 플러스] 벚꽃 피는 날, 4월 제주의 그날을 기억하는 곳으로
여전히 생생한 4·3의 현장
  • 입력 : 2019. 03.28(목)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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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3평화공원에서 치러진 4·3 70주년 해원상생굿 추모 퍼포먼스. 올해는 잊혀진 4·3 학살터인 제주시 도심 도령마루로 향한다

올해 찾아가는 해원상생굿
제주시 도심 도령마루 위령
'해태동산'으로 익숙한 곳
최소 60여명의 희생자 사연
전국 각지 추념 행사 잇따라
'잊지 말자' 마음에 새겼으면


"동편 밭담 아래 송장들이 서로 포개져서 늘비하게 널브러져 있다. 그 위를 까맣게 내려앉은 까마귀들이 사람들을 보자 까악까악 요란하게 우짖는다. 저렇게 많이! 아마도 서른 명은 넘으리라. 담가를 든 여편네들은 무서워 오금이 떨어지지 않는다. 몇몇 여편네는 끅끅 헛구역질까지 한다."

'순이삼촌'이 나온 지 1년 뒤에 발표된 현기영의 단편 '도령마루의 까마귀'(1979). 그곳에도 참혹한 죽음이 있었다. 소설 속 도령마루 성담 쌓는 울력에 동원된 이들은 그 죽음을 목격한다. 그들은 송장들을 날라다 구덩이에 '처넣는' 일까지 맡아야 했다. 소설의 마지막엔 그들중에 남편의 시신을 찾아낸 귀리집이란 여인이 "저 구뎅이에 들어가면 후제 시첼 영영 못 찾앙 말아"라며 머릿수건을 풀어 시체의 얼굴을 싼 뒤 영순이 어멍과 힘을 합쳐 담 밖으로 내던지는 장면이 그려진다.

서귀포 정방폭포. 빼어난 풍광을 간직한 관광지에도 4·3의 잔인한 기억이 배어있다

도령마루는 제주시 7호 광장을 일대를 말한다. 지금은 도령마루보다는 70년대 세운 해태상 때문에 해태동산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근래 제주공항에서 신제주를 오가는 도로가 크게 뚫리면서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이곳에서 4·3 당시 학살이 이루어졌다는 걸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2018년 제주작가회의와 탐라미술인협회에서 '4·3역사의 조난지 도령마루'란 제목으로 안내판을 세웠던 이유가 있다. 4·3유적지 탐방지에서도 곧잘 제외되고 희생 규모, 날짜나 경위, 장소 등 더 많은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4월 6일 제주민예총과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도령마루(제주시 용담2동 1863-1)에서 '찾아가는 현장 위령제'로 해원상생굿을 펼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되는 이번 해원상생굿은 제주큰굿보존회가 집전한다. 4·3영혼들이 저승의 좋은 곳으로 가도록 기원하는 굿판이 차려지고 도령마루 희생자 유족 증언, 춤꾼 박연술의 살풀이, 이종형 시인의 시 낭송, 산오락회의 노래, 현기영 소설가의 '도령마루의 까마귀와 4·3' 이야기 마당, 소박한 음식 나눔 등이 마련된다.

북촌너븐숭이 '순이삼촌' 문학비.

강덕환 시인은 '4·3역사의 조난지, 도령마루'란 글에서 "현재 도령마루의 4·3 희생자는 60여명으로 되어있으나 정밀한 조사가 더 필요하고 이 숫자보다는 더 많은 것이라는 전제가 따른다"며 "신고자에 따라 장소를 도령마루로 하기도 하지만 해태동산, 비행장 옆, 소나무밭, 서비행장 등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 시인은 "도령마루의 학살은 노형, 연동, 도남 등 여러 지역에서 여러 날에 걸쳐 이루어진 것 같다"며 "1949년 1월 쯤에 전체 희생자 66명 중 62%에 달하는 41명이 학살돼 이 시기에 가장 많은 희생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번 해원상생굿은 특히 제주4·3이 인명과 재산 피해에 그치지 않고 수백 년 이어져온 마을과 지역사회의 공동체 문화는 물론 이 땅의 고유한 정체성마저도 빼앗아갔다는 점을 환기하는 자리로 치러진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4·3 당시 수십 명의 희생자를 낸 아픔의 땅을 기억할 수 있는 도령마루는 잊혀지고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자본을 내세운 특정업체의 이름으로 대표되며 제주의 근본은 사라졌다"며 "제주4·3항쟁의 완전한 해결은 진실과 정의, 배상, 재발방지로 이어지는 국제법적 기준뿐만 아니라 제주의 정체성 되찾기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령마루에 앞서 그동안 해원상생굿으로 위무해온 학살의 현장은 제주 곳곳에 흩어져있다. 제주민예총은 2002년부터 4·3문화예술축전 행사의 하나로 해원상생굿을 열어왔다. 그해 다랑쉬굴 발굴 10주년 기념 해원상생굿을 시작으로 북촌리, 화북 곤을동, 표선 백사장, 목시물굴, 빌레못굴, 남원 의귀리, 정뜨르비행장 학살터, 성산포 터진목, 강정마을, 무등이왓, 수장이 이루어진 산지항, 정방폭포, 노형동, 관덕정을 차례로 밟았다. 제주섬 어디 4·3의 흔적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표선 백사장에서 정방폭포까지 빼어난 풍광을 품은 관광지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에는 4·3 70주년 해원상생굿이 펼쳐졌다. 하루 굿으로 끝내던 예전과 달리 1주일 동안 4·3평화공원 위령제단 앞에서 진행된 작년 해원상생굿은 생존 희생자와 고령 유가족을 위한 위무의 마당으로 기획됐다. 추정 희생자 3만명 중에서 공식적으로 신고된 1만4000여명의 신위를 올렸고 살아남은 자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굿마당으로 꾸렸다.

이제 곧 4월이다. 꽃피는 봄날, 제주시 도심 해원상생 굿판 등 4·3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보자. 4월 한달 동안 4·3이 현재와 동떨어진 과거가 아님을 말해주는 추념 행사가 잇따른다. 제주에 발디딘 여행객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무심히 바위를 오르고 바다에서 모래 장난을 하는 그곳에 배인 '잔인한 기억'이 하나둘 지워지기 전에 4·3 71주년을 맞는 오늘, 그 날을 잊지 말자고 마음에 새겨볼 일이다.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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