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0주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30년]

[창간30주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30년]
서른해 제주로 향한 문학 열기, 오늘도 쓰고 또 쓴다
  • 입력 : 2019. 04.22(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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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대 역점 사업 중 하나
1990년 시·소설 첫 수상자
현기영 김광협 등 심사위원
2016년 시조 부문까지 확대
갈수록 국내외서 응모 늘어
올해까지 수상자 63명 배출
역대 수상작 모음집도 발간


어떤 이는 "끝이 보이지 않는 짝사랑이었다"고 했다. 또다른 이는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오래 글을 쓰겠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30년 전에도 떨리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어떤 이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책임감과 함께 오는 시작의 종소리를 듣는다"며 문단에 첫발 내딛는 설렘과 두려움을 표현했다. 또다른 이는 "열심히 살고,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쓰겠다"는 소감을 썼다. 무수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이 경험한 그날의 환희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한라일보 창간 이래 해를 거르지 않고 치러온 '한라일보 신춘문예'를 말한다. 2019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감과 1990한라일보 신춘문예의 그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 않다.

신춘문예는 1989년 4월 22일 한라일보 창간호에 5대 사업 중 하나로 제시됐다. '신춘문예 현상 모집을 실시해 향토문화의 재건에 혼신의 힘을 기울일 것'이라는 소개글이 적혔다. 시, 시조, 소설 등으로 시작해 차츰 확대해나갈 계획이라는 내용도 짤막하게 덧붙였다.

첫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양진건 작가에게 상패를 전달하고 있다./사진=한라일보DB

1989년 겨울에 처음 응모해 1990년 시상이 이루어진 한라일보 신춘문예의 첫 주인공은 시 부문 진순효의 '머리를 빗으며', 소설 부문 양진건의 '여도일지(女盜日誌)'였다. 시 부문 심사위원은 시인이자 평론가인 김시태, 고영기 시인이었다. 소설 심사는 현기영 소설가와 김병택 평론가가 맡았다.

이 해를 시작으로 한라일보 신춘문예는 윤봉택, 안호석, 김지연, 부유섭, 김은형, 박주영, 김세홍, 강영란, 박미경 시인을 차례로 탄생시켰다. 소설 부문에서는 서안나, 손재중, 금나래, 김군산, 박미정, 현은정, 오지현, 김현자, 하정숙 작가가 한라일보를 통해 등단했다. 신춘문예는 시행 초기부터 '돌할으방 어디 감수광'의 김광협 시인 등 제주출신의 쟁쟁한 문인들이 심사를 맡으며 문학 발전을 위한 디딤돌을 놓는 한라일보에 힘을 보태줬다.

첫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기념촬영. 왼쪽부터 오성찬 소설가, 양진건 시인, 강영석 사장, 진순효 시인, 고영기 시인, 양중해 시인, 김병택 평론가.

시와 소설 2개 부문으로 줄곧 공모를 진행해온 신춘문예는 2016년 변화가 생긴다. 시조까지 공모를 확대해 3개 부문에 걸쳐 신춘문예 시행에 나섰다. 이 때부터 시상식을 겸한 '한라문학인의 밤'도 열어왔다. 이같은 과정을 거치며 2019년까지 30년 동안 배출된 작가는 63명이다.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의 길로 나선 이들은 수상 소감에서 밝혔듯 쓰고 또 썼다. 시인에서 소설가로, 아니면 소설가에서 시인으로 '변신'한 작가들도 있다.

'뿌리에 관하여'로 1993년 시 부문에 당선됐던 김규린(본명 김지연) 시인은 제주를 넘어 국내 문단에서 주목받아온 이다. 시집 '나는 식물성이다', '열꽃 공희' 등을 내놓았다.

1997년 시 '폐동(廢洞)'이 당선작에 뽑힌 김세홍 시인은 담백한 시어로 가족에 대한 뜨거운 애정 등을 드러낸 시집 '소설 무렵'을 엮었다. 1998년에 시 '유리창 닦기'로 당선된 강영란 시인은 꾸준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며 2015년 시집 '소가 혀로 풀을 감아올릴 때'로 서귀포문학상을 받는다.

1993년 소설에 당선된 강금중 시인이 그해 신춘문예 시상식 장에서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1999년 '미로속의 오갈피나무'로 당선된 박현솔(본명 박미경) 시인은 시집 '달의 영토', '해바라기 신화', '번개와 벼락의 춤을 보았다'를 차례차례 출간했다. 최근엔 계간 '문학과 사람' 주간으로 지난 여름 창간호를 냈다.

한라일보 신춘문예 첫해 소설 가작에 뽑혔던 양진건 작가는 1992년 '문학과사회'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대담한정신', '귀한매혹', '유배, 이 황홀한' 등이 있다.

1990년 '문학과비평'으로 등단한 서안나 시인은 이듬해 한라일보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려 '눈의 축제'로 소설 가작을 받은 작가다. 서 시인은 시집 '플롯 속의 그녀들', '립스틱 발달사'를 묶었다.

2016년 시상식에서 수상자와 심사위원, 한라일보 임원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와 소설에 이어 시조 부문이 추가돼 시조 시인을 처음 배출했다.

2006년 신춘문예에서 시 '개성집'으로 당선의 기쁨을 안았던 김명희 시인은 '화석이 된 날들' 같은 시집을 냈다. 김 시인은 소설까지 영역을 넓혀 장편 '불멸의 꽃'도 창작했다.

시조 부문이 신설된 2016년 '역광의 길'을 응모해 첫 당선자로 이름을 올린 고혜영 시인은 지난해 봄에 첫 시조집을 선보였다. '하나씩 지워져 간다'란 제목의 시조집에는 앞으로 더 처절하게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골라낸 60여수가 실렸다.

신춘문예를 문학 인생만이 아니라 평생의 반려자와 동행을 약속하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은 이도 있었다. 1993년 소설 '솔잎찾기'로 당선된 금나래 작가다.

그는 그해 1월 19일 한라일보사에서 열린 1993년 신춘문예 시상식장에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맞이했다. 앞서 동거 중이었던 부부는 신춘문예 당선을 계기로 당시 강영석 한라일보 사장의 주례로 예식을 치렀다. 1986년 다섯권의 책과 5000원 짜리 한 장을 들고 제주에 왔던 작가는 글쓰기에 대한 열정 덕에 낯선 땅에서의 삶을 지탱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신부는 시상식장 하객들에게 "이 기쁜 날을 소중히 간직하겠다"는 인사를 건넸다.

지금 그는 필명 대신 본명인 강금중 시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집 '찔레꽃은 울어예', '꽃잎 바람에 날려오다'가 있고 세번째 창작집 발간을 앞뒀다.

창간 이래 역점사업으로 신춘문예를 시행해온 한라일보는 역대 수상작을 수록한 작품집도 묶어냈다. 신춘문예 운영 이래 10년 동안의 수상작을 한데 모은 1999년부터 2017년까지 증보판을 합쳐 모두 다섯권을 제작했다. 제주도내 일간지로는 처음 신춘문예를 공모했고 나날이 뜨거워지고 있는 응모 열기를 수상작의 면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신춘문예 응모작 수는 매년 새 기록을 써나가고 있다. 새해 첫 지면을 장식한 2019한라일보 신춘문예는 국내는 물론 일본, 미국 등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1924편의 응모작이 도착했다. 2020년에도 한라일보는 문학이 들려주는 말을 독자들과 나누려 한다. 문학을 향한 사랑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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