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기억 속에서 싸우는 두 번째 전쟁의 현장

[책세상] 기억 속에서 싸우는 두 번째 전쟁의 현장
응우옌의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 입력 : 2019. 06.07(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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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쟁은 두 번 치러진다. 처음에는 전쟁터에서 싸워야 하고 두 번째는 기억 속에서 싸워야 한다. 미국인들은 '베트남 전쟁'이라고 부르고 베트남인들은 '미국 전쟁'이라고 부르는 전쟁의 기억을 보자. 미국 전몰자의 이름이 새겨진 워싱턴 DC에 있는 추모비는 약 137m에 이른다. 같은 간격으로 베트남 전몰자의 이름을 새겨 넣은 비슷한 추모비를 만든다면 아마 15㎞에 이를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베트남 전쟁이 어떻게 기억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속에서 미국 병사들은 희생자이고 300만의 베트남인들은 전체주의자들일 뿐이다.

1971년 베트남에서 태어났고 사이공이 함락된 1975년에 해상 난민이 되어 미국으로 이주한 비엣 타인 응우옌의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베트남 전쟁도 아니고 미국 전쟁도 아닌 '그' 전쟁의 기억을 만화경처럼 들여다봤다. 미국, 동남아시아, 한국, 베트남 등 베트남 전쟁 관련 기념관과 유적지를 일일이 방문하고 베트남 전쟁 관련 문화 양식을 살피면서 '전쟁을 겪은 인간이 인간답게 되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미국은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베트남을 제외한 거의 전 세계 문화 전선에서 벌어지는 기억 전쟁에서는 승리했다. 영화 제작, 도서출판, 미술계, 역사 기록물 제작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 않은가.

전쟁에서 살인은 강자의 무기다. 반대로 죽음은 약자의 무기다. 약자의 가장 큰 힘은 강자들보다 더 많이 죽을 수 있다는 것 뿐이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5만8000명 가량의 인명 손실을 입었고 한국은 5000명 정도 목숨을 잃었다. 반면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는 공식적인 전쟁 기간 동안 약 400만명이 희생됐다.

저자는 산업의 측면에서 전쟁기계에 포섭된 시민들이 결국은 전쟁을 피해 도망가는 난민 신세로 전락하거나 영원히 멈추지 않을 전쟁의 지속에 일조하는 일을 경고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비인간성을 직시해야 한다. 미학의 측면에서는 우리가 인간인 동시에 비인간임을 알고 복합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재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희령 옮김. 더봄. 2만2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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